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 없던 내용 갑자기 추가돼
중국, 비자 면제 확대 추진…이번에 한국까지 포함
무비자 입국해도 호텔 아니면 '주숙등기' 필수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중국이 8일부터 한국에 대해 내년 말까지 한시적 단기 비자 면제 조치를 하자 수교 30년이 넘었는데 중국의 비자 면제가 처음이냐며 놀랍다는 반응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아울러 중국 정부가 비자 면제를 갑자기 발표한 것을 두고도 이게 진짜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특성상 중국은 상대 국가와 인적 교류 등 중대 사안에 대해선 공식 발표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외교가에서 볼 때도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이례적 '금요일 밤' 중국 외교부 홈피서 깜짝 비자 면제 발표
중국 외교부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주 월~금 오후에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을 한다.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을 시작할 때 각국과의 정상회담이나 협정, 인적 교류, 규제 등 주요 공지 사항을 먼저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한다.
일례로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월 28일 정례 브리핑을 시작하면서 리창(李强) 중국 총리의 초청으로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10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고 발표하고 질의를 받았다.
국가 간 비자 면제는 인적 교류에 있어 큰 사안이다. 특히 한중 간의 왕래 규모를 볼 때는 더욱 그렇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한중 양국 간 인적 교류 규모는 총 1천36만명에 달했다. 방한 중국인은 602만명으로 전체 방한 외국인 중 34.4%를 차지하며 1위였고, 방중 한국인은 전체 출국자 수의 30.6%인 434만명으로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보였다.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에 따르면 린젠 외교부 대변인이 11월 1일 정례 브리핑을 할 때, 한국에 대한 단기 비자 면제 조치는 발표되지 않았고 이후 질의응답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이 끝나면 내용을 정리해서 외교부 홈페이지에 녹취록 형태로 올린다. 이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되거나 삭제되고 없던 내용이 추가되기도 한다. 추가되는 경우는 중국 정부가 외교부 브리핑에서 발표나 질의응답에 나오지 않았지만,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은 사안이 대부분이다.
한국에 대한 단기 비자 면제 조치는 정례 브리핑에 '없던 내용이 추가'된 경우다.
11월 1월 오후 9시 2분(현지시간)에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린젠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 녹취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없던 내용이 추가됐다.
<브리핑 후 한 기자가 "우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슬로바키아 총리를 만났을 때 중국이 일방적으로 슬로바키아 비자를 면제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에 주목했다. 이미 시행 중인 20개국 외에 새로운 비자 면제 국가가 있나?"
린젠 대변인 : 중국과 외국 간의 인적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중국은 2024년 11월 8일부터 슬로바키아,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안도라,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및 한국의 일반 여권 소지자에 대해 비자 면제 국가의 범위를 확대하고 무비자 정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 12월 31일까지 9개국의 일반 여권 소지자는 비즈니스, 관광, 친척 및 친구 방문, 국경 통과 15일 이내의 경우 비자 없이 중국에 입국할 수 있다">
이런 깜짝 발표로 유럽 8개국과 한국이 추가되면서 일방적 단기 비자 면제 대상 국가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폴란드, 호주 등 29개국으로 늘었다. 다만 지난해 8월 한국과 함께 중국인 단체관광 허용 대상에 포함됐던 미국과 일본은 이번 단기 비자 면제 대상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정부는 공식 확인 안 해줘…정확한 발표 시점 몰랐던 듯
이처럼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에 나온 중국의 깜짝 발표와 관련해 종합해보면 중국 정부에서 단기 비자 면제에 대한 언질을 우리 정부에 줬을 가능성도 있지만 정확한 발표 시점은 전달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중국의 단기 비자 면제 발표에 대해 통보를 못 받았다는 반응이며, 우리 외교부도 한중간에 지속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고만 반복할 뿐 공식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지난 4일에서야 '중국 영사 뉴스' 자료를 통해 중국 외교부가 8일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 한국 등 9개국 일반 여권 소지자 대상으로 단기 비자 면제 정책을 시행한다는 베이징일보의 보도를 전했다.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는 4일 한국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번 무비자 조치로 한국 국민의 중국 방문 편의가 크게 증진될 것"이라며 "양국 간 인적 교류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중국 측 조치로 우리 국민의 중국 방문이 보다 편리해진 만큼 양국 간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한중 관계 전문가인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중국이 무비자로 풀어줄 경우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국가가 한국이고, 한중 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으며 북한에 대한 견제구 카드가 될 수 있어 중국이 깜짝 발표 형식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이 1992년 수교를 맺었지만, 중국이 한국에 비자 면제를 시범적으로라도 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맞다.
기존에 한국인이 무비자로 중국에 갈 수 있는 경우는 중국을 경유할 때만 가능했다.
중국 도시를 경유해 제3의 국가를 갈 때는 72시간 또는 144시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했다. 또한 이 기간 관광, 임시 비즈니스 방문 등 단기 활동이 허용됐다. 지난 6월 28일부터 72시간 경유가 가능한 중국 도시는 창사(長沙), 하얼빈(哈爾濱), 구이린(桂林) 등이며 144시간 경유가 가능한 도시는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상하이(上海), 난징(南京), 항저우(杭州) 등이었다.
◇ 무비자 입국해도 호텔 아니면 주숙등기 반드시 해야
중국이 단기 비자를 면제했다고 하더라도 중국에 도착한 한국인들이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입국 후 외국인 임시 거주 등록인 '주숙등기(住宿登記)'를 꼭 해야 한다. 주숙등기는 외국인 임시거주 등록으로, 외국인이 중국에서 숙박하는 체류지를 인근 파출소에 신고하는 것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호텔에서 체류할 경우 체크인 시 자동으로 주숙등기가 되기 때문에 중국으로 단체여행을 간 한국인들은 주숙등기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인 거류지인 아파트나 에어비앤비, 3성급 미만의 숙소에서 체류하거나 중국 내 가족, 친구의 집에 머물 경우 주숙등기를 해야 한다.
주숙등기를 하려면 입국 후 24시간 내 지역 관할 파출소에 가서 신고하면 되는데, 본인 여권을 지참하고 여권 사본, 여권 내 입국 도장이 찍힌 사본, 집 계약서 사본, 집주인 신분증 사본 등을 제출해야 한다.
주숙등기를 하지 않을 경우 중국 현지에서 사건ㆍ사고 발생 시 보호받지 못하며, 한국으로 돌아올 때 공항에서 억류돼 조사받을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주숙등기가 미뤄질 경우 하루당 500위안(한화 9만7천여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경기 침체' 중국, 제한적 무비자 시행 늘리는 추세
비자 면제는 양국 간 '상호주의'가 적용되는 게 일반적인데 일방적으로 한 국가만 해도 되는 걸까.
양국이 상호 협의로 비자 면제를 같이하면 좋지만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해도 국제법 등의 문제는 없다.
한국의 경우 제주도를 방문하는 중국인만 30일간 무비자 정책을 하고 있어, 이번 조치는 중국의 일방적인 비자 면제 조치로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제한적으로 무비자 시행을 늘리는 추세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말레이시아 국적자를 대상으로 상용, 관광용, 친척 방문 목적 또는 경유 기간이 15일을 초과하지 않으면 무비자를 허용했다.
이어 올해 3월 14일부터 11월까지는 2차 무비자 시행 국가로 스위스, 아일랜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포함됐다.
태국과 싱가포르, 브루나이에 대해선 중국이 영구적으로 단기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태국은 올해 3월부터 최대 30일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며, 싱가포르는 2월부터 최대 30일, 브루나이는 지난해 7월 26일부터 최대 15일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게 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비자에 엄격했던 중국이 무비자 시범 대상국을 늘리는 이유는 코로나 사태 이후 내수 침체가 심각한데 외국인 관광객마저 저조해지자 이를 늘리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면서 "중국으로서는 무비자 시행 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올 수 있는 곳은 한국이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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