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이지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고비의 순간 90도 대국민 사과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벼랑 끝에 몰린 윤 대통령과 정권의 운명은 이후 민심의 향배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그간 윤 대통령을 향해 대국민 사과와 쇄신을 요구해 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평가가 민심을 좌우할 '결정타'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두고 "진솔했다"는 평가와 "술자리 잡담 수준"이었다는 혹평이 양립하고 있다. 민심 이반과 국정 동력을 회복할 윤 대통령의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던 만큼 여당은 치켜세우기, 야당은 깎아내리기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다만 여당 일각에서도 윤 대통령의 '극약 조치'가 없었다는 점에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대표는 △대통령의 사과 △대통령실 참모진 전면 개편 △쇄신용 개각 △김건희 여사의 대외활동 즉시 중단 △특별감찰관 임명 등을 요구해왔다.
이 가운데 명쾌한 출력은 '대통령의 사과'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실체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정 지지율 경색의 근본적 배경으로 꼽히는 '김 여사 문제'에 대한 윤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이 들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 "'金여사 악마화' 발언 부적절…'역풍' 가능성 높아"
전문가들은 이번 회견을 "용두사미(龍頭蛇尾)"에 빗대 표현했다. 사과까진 좋았으나 여론의 반전을 기대하긴 역부족인 회견이었으며 김 여사 문제를 변호하는 듯한 언사는 자칫 역풍을 부를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날 통화에서 "시작은 성대했는데 끝은 흐지부지됐다. 사과까진 좋았지만 각 논란을 설명할 때마다 과거 스탠스로 회귀한 모습"이라며 "핵심은 김 여사 문제였는데 '악마화시켰다'는 발언 등 여전히 변호하려는 듯한 인상을 풍긴 것에 대해 굉장히 부적절했다. 김 여사 특검 요구에 대해서는 거부 입장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특별감찰관 도입' 등 한 발짝 더 나갔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실망스럽다. 사과해야 할 사안이 명확하지 않았나"라며 "국정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는 김 여사와 관련해서 국민이 만족할 만한 답변이 일단 나와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 여사가 잘못한 게 없고 오히려 (세간에서) 악마화했다'는 대통령 발언에 국민들로서는 놀랄 만하다"며 "사과하는 사람이 '사과할 점을 짚어 달라'는 말을 한 것은, 마치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언성 높이고 싸우다가 '일단 사과하라니까 하긴 하지만 난 사과할 게 없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회견이) 역효과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평가절하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 담화를 두고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윤 대통령 지지율의 추가 하락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엄 소장은 "국정 동력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한 대표가 윤 대통령 회견을 두고 쇄신안을 정면 압박하고 나선다면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 이유로 "한 대표가 의정 갈등과 김 여사 문제 등에 대해 입을 열 때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늘 떨어졌었다"는 점을 들었다.
한 대표는 아직 별도의 입장 없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만 기자들과 만나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국정 현안에 대해 진솔하고 소탈하게 말씀하셨다"며 "이를 계기로 국회도 정쟁을 중단하고, 시급한 민생을 보살피고 외교·안보 현안을 챙기는 본연의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와 공천개입 핵심 인물 명태균 씨 관련 의혹 등 각종 논란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제 주변의 일로 국민께 염려를 드렸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며 "국민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 사과한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워낙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저도 제 아내와 관련한 기사를 꼼꼼히 볼 시간이 없다"며 "어떤 점에서 (사과해야 하는지) 딱 짚어주신다면 사과를 드리겠다.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겠다"며 언급을 삼갔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11.7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