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2' 정인지, "헌신적 모성애보다 고난의 시대 살아낸 한 여성에 주목"[인터뷰]

스포츠한국 2024-11-08 07:00:00
사진 출처=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 정인지 사진 출처=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 정인지

[스포츠한국 이유민 기자] 배우 정인지는 '파친코' 시리즈에서 주인공 선자(김민하)의 어머니, 양진 역을 맡아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살아가는 여성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그는 단순한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양진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정인지는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사람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나 ‘파친코’ 시리즈 속 양진을 연기하며 느꼈던 생각들을 전했다.

Apple TV+의 글로벌 시리즈 '파친코'는 지난 2022년 3월 15일 시즌1이 첫 공개됐으며, 지난달 11일 시즌 2가 완결됐다.

‘파친코’ 시리즈는 한국 이민자 가족의 네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아, 역사와 가족의 복합적인 관계를 그린다. 일제강점기부터 근대화의 초입을 지나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촘촘히 이어가는 이 드라마는 방대한 스케일로도 주목을 받았다.

2022년 3월 첫 공개 이후, 파친코는 제4회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화 비평가 협회상에서 최우수 국제 작품상을 받았으며, 에든버러 TV 어워즈에서는 최우수 국제 드라마상을, 골드 더비 어워즈에서는 최우수 드라마상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제2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외국어 시리즈 상을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정인지는 ‘파친코’ 속 양진을 단순한 엄마의 역할로 접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엄마’라는 단어는 그 사람의 삶을 단순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한 여성이자 딸을 사랑하는 인물로 해석하려 했다고 전했다. 그가 말한 양진은 시대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실에서 고난을 묵묵히 이겨내는,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와 닮아 있었다.

“1910년대 여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저의 감정에서 출발한 후 그 시대를 더해가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제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캐릭터에 다가갔던 것도 큰 도움이 됐죠.”

그러면서 정인지는 외할머니와의 기억을 언급하며 감정적인 연결고리를 강조했다. 특히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던 시절을 떠올리며 연기에 몰입했다고 전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촬영이 시작됐는데, 그 감정이 양진을 연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어요.”

사진 출처=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 정인지 사진 출처=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 정인지

파친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배우 정인지는 원작 소설을 교과서처럼 삼아 작품에 접근했다며"드라마화 과정에서 각색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언제든 원작의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고 전했다.

드라마 속 양진은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양진이 딸 선자를 떠나보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 장면에서 양진이 사랑을 드러내지 않고 감정을 꾹 참아내요. 그 모습에서 인물의 성격이 잘 보였다고 생각해요. 양진은 전쟁과 식민지 시대의 고통을 겪고도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을 지켜낸 인물이에요. 하지만 엄마라는 역할에 갇히지 않고, 하나의 여성으로 그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특히 시즌 1의 ‘눈물의 쌀밥’ 씬은 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집가는 딸을 위해 한국에서 자란 쌀로 흰쌀밥을 지어 먹이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마음이 잘 담겨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해당 장면을 촬영할 때의 감정과 기억을 이렇게 말했다.

“쌀밥 장면이 그렇게 큰 인상을 남길지 저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 장면은 단순히 쌀이 부족해서 슬픈 게 아니라, 어머니들이 자식을 떠나보내며 느끼는 깊은 감정이 담긴 장면이에요. 소중한 딸이 시집가는 날, 평생 먹어보지 못한 귀한 쌀밥을 차려주는 마음이 얼마나 애틋했을까 생각했죠. 결국 글이든 연기든 영상이든, 그것을 읽고 보는 이들의 기억과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각자의 ‘쌀밥에 대한 기억’이 모여 그 장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 것 같아요.”

김민하 배우와 애틋한 모녀 관계를 연기하며 감정적으로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두 배우 간의 케미를 어떻게 만들어 나갔는지 물었다.

"대본상의 이야기를 깊이 나누진 않았지만, 서로의 일상이나 삶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이러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에 묻어나와, 더욱 진정성 있는 관계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김민하 배우가 시야가 넓고 유연한 면이 많아서 가능했던 부분인 것 같아요."

사진 출처=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 정인지 사진 출처=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 정인지

정인지는 ‘파친코’ 시리즈를 통해 자기 삶의 속도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도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고 말했다.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속도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됐어요. 넘어진 채로 갈 때도 있고, 멈춰가며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이 작품에 담겨 있었죠. 달리기할 때 남의 속도를 따라가면 금방 지치잖아요. 연기 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오래 가려면 내 페이스를 지키는 게 중요해요.”

그는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2003년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첫 스크린에 등장했고, 2007년에는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다. 그러나 2010년경 약 4년간의 공백기를 가졌으며, 생활의 어려움으로 배우 활동을 잠시 멈추고 한 회사의 사무직으로 취업해 직장인의 삶을 살기도 했다. 이에 정인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큰 변화를 경험했다고 밝히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이 작품은 제게 과속방지턱 같은 역할을 했어요. 더 나아가고 싶을 때 한 번 멈추게 하고, 조급함 없이 나아가도 된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세상은 항상 빠르게 변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중요한 것은 내 속도를 지키며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정인지는 지금도 꾸준히 다양한 무대와 작품에 도전하며 성장 중이다. 그의 연기를 통해 오래 기억될 인물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파친코’는 현재 Apple TV+에서 시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