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 이란과 또 '리더십 미스매치'

연합뉴스 2024-11-08 00:00:40

'핵합의 파기' 트럼프, 온건파 이란 대통령과 엇갈려

이란에 적대적 태도 여전…미·이란 강대강 충돌 가능성

'트럼프 당선' 신문 읽는 이란 시민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미국과 이란의 '리더십 미스매치'가 재현됐다.

2015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권과 이란 개혁파 하산 로하니 정권이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극적으로 성사했지만 이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2017년 1월 취임한 트럼프가 2018년 5월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제재를 부활하자 이란도 이에 대응해 동결·축소했던 핵프로그램을 재개했다.

2020년 대선에서 미국에선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지만 2021년 이란에선 반미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가 대통령이 됐다.

양측은 핵합의를 부활하기 위한 협상을 재개했으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중단되고 말았다.

올해 5월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추락으로 급사한 뒤 치러진 7월 대선에서 온건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당선돼 서방과 핵합의 재개에 희망이 비치는 듯 했지만 미국에서 트럼프가 재등장했다.

집권 1기 때 이란을 불신하고 극히 적대적이었던 트럼프의 시각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7월 공화당전국위원회(RNC)에서 바이든 정부에서 이란이 핵개발 능력을 키워 핵무기를 손에 넣기 직전이 됐다고 비판하고 '최대 압박 제재'를 가한 자신의 1기 집권 때는 이란이 경제적으로 허약해져 핵 개발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면 이란에 대해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겠다"며 "여기엔 이스라엘의 잠재적 군사 행동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7월 유세 중 발생한 암살 기도 사건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기도 했다.

김혁 한국외국어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본인의 핵합의 탈퇴, 강한 제재가 이란을 압박하는 실효가 있었다고 자신한다"며 미국과 이란 관계에 트럼프 당선은 악재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스라엘 국기 앞에선 도널드 트럼프

'언쟁'으로만 그쳤던 이스라엘과 대치가 군사 행동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전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의 재집권이 확정되자 곧장 그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 약 20분과 통화하며 이란의 위협에 대해 논의했다. 별도 성명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귀"라고 트럼프 당선인을 띄우며 "진실한 우정"도 언급했다.

네타냐후 정부는 트럼프의 재등장을 발판삼아 바이든 정부에서 유보했던 이란의 핵시설까지 타격할 가능성도 커졌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수십년간 팽팽했던 이란 진영과 대치에서 우위에 설 기회를 잡은 셈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이란을 또다시 고립시키기 위해 1기 정부 때처럼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수니 아랍권 국가와 결속을 다질 가능성도 있다.

2020년 역사적인 '아브라함 협정'을 성공한 경험이 있는 만큼 중동의 판도를 바꾸는 마지막 조각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국교 정상화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이란을 더욱 압박한다면 이란은 핵무기 개발 완성과 더 나아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강수를 둘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가까워진 러시아와 군사·안보적 밀착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격으로 볼 때 예상과 다르게 이란과 대치를 풀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는 9월 유세에서 이란과 협상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물론 그렇게 하겠다"라며 이란의 핵개발에 따른 위협 때문에 대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답했다.

즉흥적인 대답일 수 있지만 유럽과 이스라엘을 사거리 안에 둔 탄도미사일 기술이 발달한 이란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그 역시 심각성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와 네타냐후 정부가 불협화음을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 모두 신속히 종식하겠다고 거듭 강조했기 문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대선 직전 트럼프 당선인이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하며 '내년 1월 대통령 취임 전까지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길 바란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두고 이스라엘 관리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스라엘 관리들이 전쟁을 빨리 끝내기에는 내부적으로 정치적 제약이 있고 극우파가 포함된 이스라엘 내각이 트럼프 행정부와 충돌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분석했다.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