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미술관 '서울 오후 3시'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디지털카메라가 대중의 일상으로 들어왔던 2000년대 미술작가들도 자연스럽게 자기 주변의 일상을 카메라로 찍었다. 회화 작가들 중 일부는 이렇게 찍은 사진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변주해 화폭에 옮겼다.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7일 시작한 전시 '서울 오후 3시'는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한 첫 세대 작가 중 사진으로 실제 인물과 풍경을 포착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린 9명에 주목한다.
이광호(1967년생)를 제외하고 모두 1970년대생인 작가들의 전시작들은 모두 사진에서 출발했지만 작가마다 이를 회화로 전환하는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다.
김수영은 서울의 건축물들을 사진으로 찍은 뒤 이를 그림으로 옮겼다. 지금은 사라진 옛 서울 중학동 한국일보 사옥을 비롯해 건물 외벽의 반복되는 모듈 구조를 그린 그림은 일종의 기하학적 추상회화가 됐다.
박주욱은 디지털카메라로 나무 사진을 찍고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네거티브 필름의 반전 효과를 적용한 뒤 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은 반전 효과로 인해 마치 안과 밖이 뒤바뀐 듯한 느낌을 준다.
박진아는 플래시가 터질 때의 효과에 관심을 가졌다. 밤에 마실을 다니는 사람들을 그린 '문탠' 연작은 플래시를 터뜨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뒤 이를 조합해 한 화면에 그린 작품이다. 배경은 어둡지만 인물은 평면적으로 밝게 찍히고 렌즈에 묻은 먼지 때문에 마치 달이 뜬 듯한 이미지가 나오는 플래시의 효과를 회화로 표현했다.
서울 금호동에서 자랐던 이제는 재개발을 앞둔 금호동 곳곳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옮겼다. 비교적 사실적으로 풍경을 재현했지만 아련한 색조와 부드러운 붓질로 사라질 대상에 대한 작가의 감정까지 담아냈다.
전시에서는 이들과 함께 강석호, 노충현, 서동욱, 이광호, 이문주 등 9명 작가가 2000년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풍경과 인물 그림 50여점을 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은주 독립큐레이터는 "참여 작가들은 이전 시대 작가들이 카메라를 활용했던 방식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며 "극사실주의처럼 사진의 사실성을 그대로 가져오지도 않고 민중미술의 치열한 현장과도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중립적이고 개인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2월8일까지. 유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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