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17년만에 미국을 떠난 이유…이훤 산문 '눈에 덜 띄는'

연합뉴스 2024-11-07 09:00:27

공포소설 대가의 중단편 모음 '러브크래프트 걸작선'

눈에 덜 띄는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눈에 덜 띄는 = 이훤 지음.

사진작가이자 시인인 이훤의 산문집이다. 17년 동안 미국에서 이민자로 생활하며 겪은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첫 장인 '공항 검색대에서'는 작가가 배우자와 함께한 여행길에서 입국 심사를 통과하며 과거의 이민 생활을 떠올리는 데서 시작한다.

공항 보안검색대 직원의 깐깐하고 고압적인 태도에 그는 "국경에서는 들어가려는 우리보다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그(직원)가 훨씬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멀리 가는 친구에게'는 타국으로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던 감상을 담았다. 작가는 자기의 이민 경험을 담은 시를 친구에게 읽어주고 싶었지만, 당시 느꼈던 절박한 마음이 혹여나 친구의 미래처럼 읽힐까 봐 그만둔다.

'내가 잘 안 보인다는 감각'에는 작가의 목소리가 솔직하게 담겼다.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나선 아시아계 양쯔충(양자경)과 키 호이 콴을 백인 배우들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듯 지나치거나 성의 없는 인사만 건넨 장면을 거론한다.

그는 이 장면을 두고 "17년간 살았던 미국을 떠나기로 한 이유를 떠올리지 않기 어려워졌다"며 "내가 잘 안 보인다는 감각. 일상적으로 눈에 덜 띄던 날들을 떠올렸다"고 회고했다.

"이민자들은 보편적으로 자신이 작아지거나 없는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몇 번이고 재고한다. 방금 그거 오해일까? 혹시 나의 피해의식일까? 본인은 기분이 나쁜데 타인은 자꾸 아니라고 하니까 자기 확신이 모자란 사람이 되고 만다."

마음산책. 240쪽.

러브크래프트 걸작선

▲ 러브크래프트 걸작선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지음. 이동신 옮김.

공포 소설의 대가인 미국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대표 중단편 다섯 작품을 모은 소설집이다.

이질적인 존재를 마주할 때 접하는 공포감과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을 표현한 '크툴루의 부름'과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가 수록됐다.

아무도 없는 성에 살던 주인공이 높이 솟은 탑을 기어올라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외부자', 조상이 소유권을 빼앗겼던 저택을 손에 넣은 주인공이 이 저택의 벽에서 끔찍한 쥐 떼 소리를 밤마다 듣게 되는 내용의 '벽속의 쥐들'도 담겼다.

수록작 중 가장 분량이 긴 '우주로부터의 색'은 운석이 떨어진 후 황무지로 변해버린 땅의 비밀을 추적하는 내용을 다룬 소설이다. 러브크래프트가 생전 자기 작품 중 최고로 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판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태곳적 공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러브크래프트는 독보적인 문학을 구축한 작가로 평가받는다"고 소개했다.

을유문화사. 292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