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10년 넘게 K리그1(1부리그) 승격을 바라보는 팀에 초보감독이 사령탑으로 온다고 발표되자 팬들도 의심을 품었다. 코치로는 경력이 있지만 프로감독 경험은 없었기 때문.
하지만 팬들의 걱정을 하루빨리 덜어주고 싶다던 그 초보감독은 지도자로서 움츠리고 있던 자신의 꽃봉오리를 만개하며 안양 구단에 역사상 최고의 선물을 안겼다.
스포츠한국은 경기도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안양의 창단 첫 K리그1 승격을 이끈 유병훈 감독을 만났다.
'아내 전화에 울고-이정효 전화에 웃고', '승격명장' 유병훈을 만든 시간[안양 승격인터뷰①]에서 계속
▶‘안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바보같은 녀석들’
올 시즌 안양의 긍정적인 변화에서 '줄어든 실점'을 빼놓을 수 없다. 안양은 지난 시즌 58득점으로 K리그2 13팀 중 득점 2위를 차지했지만, 실점은 5번째로 많은 51실점을 기록했다. 많은 골을 넣었음에도 실점 역시 많이 허용해 승점을 쌓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안양은 35경기 동안 고작 34실점만을 허용하며 최종전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최소 실점 1위를 달리고 있다. 13경기 무실점이며, 리그에서 거둔 18승 중 무려 17승이 1실점 이하로 내주고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수비의 힘이 대단했다. ‘1실점 이하-1점 차 승리’는 11승이나 됐다.
감독실 책상 위에 있던 파일 자료를 집어든 유병훈 감독은 올 시즌 시작 전 선수들과의 첫 미팅 순간을 떠올렸다. 그가 구단과 진행한 취임 인터뷰 당시 언급했던 '꽃봉오리 축구'의 시작이었다.
“연령대가 비교적 높은 안양의 선수단을 보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실점을 줄여야했다. 선수단과의 첫 미팅에서 우승,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지난 시즌보다 승점을 얼마나 더 쌓아야 하는지, 실점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등의 수치와 공수 상황별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등을 담은 자료를 나눠줬다. 시즌 중에 힘들 때마다 이걸 보면서 마음을 다잡자고 했다. 올 시즌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 중 하나 빼고 다 이뤘다. 가장 중요한 승격까지 성공했으니, 경남과의 최종전 홈경기에서 무실점 승리를 거둬 평균 실점 0점대로 시즌을 마치고 싶다.”
유 감독은 인터뷰 내내 안양 팬들은 물론, 1부리그 승격이라는 결과를 얻기까지 안양 구단을 위해 힘써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함께 고난을 헤쳐 온 이들과 영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며, 어떠한 성과에도 겸손할 줄 아는 리더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안양의 응원가 가사처럼, 유 감독도 팬들도 ‘안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바보같은 녀석들’이었다.
“승격을 했을 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고, 이후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기쁨이 몰려왔다. 2013년 창단 때부터 안양의 행보를 함께 하고, 멀리서 볼 때도 있었지만, 이 팀은 반드시 승격해야 하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안양과 인연을 맺은 지 11년이지만 팬들 중에는 20년 넘게 안양의 축구팀을 응원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이 FC안양 창단 과정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는지 잘 안다. 이 승격이 안양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이 된다면, 그게 감독으로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이다.”
▶만개한 꽃을 든 ‘유병훈표 좀비군단’, 더 높은 ‘보랏빛 하늘’로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축구감독 리누스 미헬스는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이라는 명언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눈이 헷볕에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이번 시즌의 우승이 다음 시즌의 결과까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기에 지난 영광을 잊고 다시 땀 흘려 준비해야 한다는 말. 2024시즌 K리그2 우승과 함께 창단 첫 K리그1 무대를 밟게 된 안양도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기에, 유 감독도 이를 잘 알고 다음 시즌에 대한 구상을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 시즌의 안양은 올해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일단 파이널 A(1~6위)에 드는 것, K리그1에 꾸준히 잔류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물론 당장 K리그1 우승을 말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꿈같겠지만, 안양은 11년의 도전 끝에 꿈같은 승격을 이뤄낸 팀이다. 또 우여곡절을 겪을 테지만 꾸준히 도전하다보면 더 높은 꿈을 이루지 말란 법도 없지 않나. 모두가 생각하는 팀과의 맞대결은 물론 ‘디펜딩 챔피언’인 울산과의 만남도 기대된다. 신입생이 챔피언을 이기면 자신감을 엄청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유 감독은 시즌 시작 전에 ‘꽃봉오리 축구’를 하겠다는 말을 괜히 한 것 같다는 얘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종종 꺼낸다. 그 발언 이후 유 감독과 관련된 기사에 ‘꽃봉오리’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으며, 안양 구단 홍보팀에서도 영상 콘텐츠에 ‘꽃’과 관련된 말을 심심치 않게 쓴다. 그 정도로 유 감독을 상징하는 말이자, 안양에서는 하나의 ‘밈’이 된 것. 이제는 안양의 1부리그 승격을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안양의 K리그1 무대 선전과 2025시즌의 새로운 밈 탄생을 기원하며, 유 감독에게 1부리그에서 보여줄 안양의 축구도 한 단어로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높은 무대에서 질 수도 있지만, 계속 쓰러져 있을 수는 없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버티고 일어서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넘어져도 끈질기게 일어나는 ‘좀비’가 되겠다. 안양이 미래에 더 높은 꿈에 도달할 수 있도록, 유병훈이 발판 역할을 하겠다.”
만개한 꽃을 든 좀비 군단이 더 높은 보랏빛 하늘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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