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20집 신곡 '그래도 돼'·'타이밍' 노랫말 쓴 임서현 작사가
"곡 작업 참여는 하늘이 준 타이밍…30년 만에 어머니도 격려"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조용필 선생님과의 작업 경험은 제 작사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도 뜻깊은 과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가사의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완벽을 추구하셨죠."
'가왕'(歌王) 조용필이 지난달 11년 만의 정규 20집으로 가요계에 돌아오면서 그의 노랫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평소 그가 곡의 메시지는 물론 소리의 강약에 맞는 발음, 라임(rhyme·운율) 같은 재미 요소까지 고려해 가사를 완성하는 데 엄청난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신보 타이틀곡 '그래도 돼'에서 '이 길에 힘이 겨워도 / 또 안 된다고 말해도 / 이제는 믿어 믿어봐 / 자신을 믿어 믿어봐'라는 가사로 팍팍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그래도 돼'와 수록곡 '타이밍'(Timing)의 노랫말을 쓴 임서현 작사가는 4일 연합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조용필 선생님은 오랫동안 가사를 써 왔다는 저조차 놓치고 있던 세세한 부분을 챙기셨다"며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들인 작업이 얼마나 좋은 노래로 탄생하는지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밝혔듯이 스포츠 경기를 보던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패자에게서 영감을 얻어 '그래도 돼'를 작업했다.
"마침 이 곡을 처음 듣고 처음 생각한 콘셉트가 마라톤이었어요. 인생이라는 게 마라톤 같잖아요? 고된 여정을 살아온 사람들이 위로받았으면 했는데, 마침 (조용필) 선생님이 스포츠 경기를 말씀해 주셨죠. 실패와 좌절도 겪으며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선생님의 마음을 담아보기로 했어요."
임 작사가는 "'가왕'으로 불리는 선생님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경험과 노력을 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과정을 잊고 지금의 자리에 취할 수 있을 텐데, 선생님은 힘들게 쌓아 온 그 모든 날과 경험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분"이라며 "꿈을 향해 평생 정진했기에 승자든 패자든 그 노고에 공감하신다는 생각에 '역시 가왕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돼'를 듣다 보면 가사에 담긴 메시지뿐만 아니라 조용필의 단단한 발음 또한 귀에 착 감긴다. '다짐을 놓쳐!' 혹은 '흩어져 버리는 외침!'이라는 부분에선 7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하게 생동감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임 작사가는 "이 구간들은 선생님이 하나하나 지적해 함께 수정한 부분이다. 멜로디의 강약이 존재한다고 할 때 이곳들은 '강'에 해당하는 음이었다"며 "선생님은 '멜로디가 강해지는 곳에선 가사도 함께 강함을 드러내는 어감 표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도 이 조언에 따라 듣는 입장에서 강한 느낌을 주는 '놓쳐'·'외침'의 'ㅊ' 같은 거센소리를 쓰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가왕의 세심함은 임 작사가가 가사를 쓴 또 다른 노래 '타이밍'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다 멀어질까 봐 겁나(니까∼)' 혹은 '첫눈에 너일 거라는 느낌(느낌∼)' 같은 부분에서 된소리 'ㄲ'을 활용해 곡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동시에 듣는 재미를 줬다.
'타이밍'은 진지한 분위기의 '그래도 돼'와 달리 경쾌한 곡으로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임 작사가는 "선생님이 '이 곡은 재미있게 가보면 어떨까'라고 했다"며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긴 1·2절을 쓰고, 후렴구는 반복적인 느낌을 살려 재미있게 들리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 곡에는 아침 늦잠 때문에 지하철을 놓친 '깨어진 일상'이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설레는 이야기가 담겼다. '사랑에는 타이밍… / 인생에는 타이밍… / 중요한 건 타이밍…' 하고 반복되는 소절에선 리듬감이 살아났다.
"반복되는 자리에 어떤 단어가 잘 어울릴까 생각하다가 '타이밍'이 입에 잘 붙더라고요. 그래서 후렴의 반복되는 지점에 이 단어를 먼저 정해두고, 전체적인 가사와 이야기를 만들었죠."
임 작사가는 "제가 선생님의 곡을 작업하게 된 것도 하늘이 준 '타이밍'이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그는 "선생님이 이 곡을 주면서 '재미있는 가사'를 요청한 지점부터 인상 깊었다"며 "그 정도 위치와 연륜이면 우아하고 웅장한 곡만 부르려 할 수도 있는데 다양한 대중의 '니즈'(needs·요구)를 고려하셨다. '진정한 대중음악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 작사가는 지난 1994년 이래 버즈의 '가시'·'사랑은 가슴이 시킨다', 레드벨벳의 '쿨 월드', 노라조의 '굿바이 로맨스' 등의 노랫말을 썼다.
그는 "다들 최종 목표쯤으로 생각하는, 조용필이라는 뮤지션의 작업에 참여한 것은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저 역시 초등학생 때부터 1위를 못 하면 밥상을 엎을 정도로 열렬한 조용필 '오빠'의 팬이었답니다. 30년 작사가 인생에서 한 번도 저희 어머니가 '수고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조용필 선생님과 작업한다고 하니 '고생했다, 수고했다'며 격려해주셨죠. 역시 조용필은 조용필이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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