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총성없는 전쟁' 심리전

연합뉴스 2024-11-05 00:00:46

北, 대북심리전에 예민한 까닭은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기자 = 심리전(心理戰)은 아군과 적군의 심리를 유도해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작전이다. 적군의 전투 의지를 무력화하거나, 아군의 사기를 북돋는 행위가 심리전의 요체다. 한나라 유방군이 해하(垓下)에서 서초의 항우군을 포위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꺾고자 초나라 민요를 불렀다는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대표적 사례다.

남북한은 6·25 전쟁 이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심리전을 전개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남북 간 심리전 경쟁은 극에 달했다. 우리 군은 1990년 10월1일 육·해·공군에 흩어져있던 심리전부대를 통합해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군심리전단'을 창설하고 대북 심리전을 강화했다. 심리전에서 주로 활용되는 수단은 확성기 방송과 전단(삐라) 살포다. 남북한 경제력 차이만큼 심리전에서도 우리 군이 북한군보다 장비 성능과 내용 면에서 압도적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

대북 방송은 휴전선 인근 최전방 감시초소인 GP(Guard Post)에서 고출력 스피커를 통해 송출하는 방식이다. 체제 비방뿐만 아니라 젊은 군인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들려주거나, 국내외 뉴스나 스포츠 소식 등과 같은 정보도 제공했다. 송출기능이 우수해 맑은 날이면 개성에서도 대북 방송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북한군에게 인기가 많은 노래는 단연 트로트와 발라드였다. 이미자·설운도 가수의 노래가 단골 레퍼토리였다.

기능과 효과 면에서 뛰어난 심리전 매체는 대북 전단이다. 동남풍이 부는 여름철에 풍속·풍향을 측정해 수소를 충진한 기구(언론매체에서는 풍선이라고 하지만 군에서는 기구라고 칭한다)를 북한 지역으로 날려 보낸다. 기구 1개당 무게 4∼5㎏가량의 전단을 담은 포낭을 매달고 부양할 수 있는 부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알코올로 고도를 유지하고, 타이머를 장착해 작전 타깃에 정확히 살포할 수 있을 정도로 대북 전단작전은 정교하게 설계됐다.

우리 군에서 살포하는 대북 전단은 코팅지로 제작돼 파손 우려가 없다. 전단에는 연예인들의 사진도 있지만,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서울의 모습, 행복한 가정생활 등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 '매개물 작전'이라고 해서 포낭에 단파 라디오나 속옷, 칫솔·치약, 쌀 등을 넣어 살포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한국 드라마를 담은 콤팩트 디스크(CD)나 이동식 저장장치(USB)도 매개물 작전의 단골 메뉴였을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는 최근 북한 당국이 개성 등 남북 접경지 주민들을 북·중 접경지로 이주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접경지 주민들이 대북 방송과 전단을 통해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한 조치로 짐작된다. 반면에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00m 떨어진 대성동 마을 주민들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에 따른 소음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올해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살포 사건으로 남북 간 심리전 경쟁이 재개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jo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