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35] 한혜경 '엄마라는 존재를 생각하다'

데일리한국 2024-11-04 19:18:25

언제 떠올려도 포근해지는 말이 있다. 나직하게 불러보면 어린 날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가슴 한구석이 촉촉해지는 말, '엄마'라는 말이다. 이 말에서 제일 먼저 연상되는 정경은 '모정'과 희생적 사랑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그냥 뚝딱뚝딱하는 것 같은데도 찰떡처럼 맛있는 맛을 내는" 솜씨, 학교에서 돌아오면 웃으며 맞아주고, 다치거나 아플 때 따스하게 안아 주는 푸근함 같은 것이겠다.

임병미의 는 이러한 엄마 이미지를 충족시키지 못한 엄마로 인해 시렸던 지난날과 뒤늦게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딸의 깨달음을 꾹꾹 눌러 담아 섬세하게 펼쳐낸 글이다.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아팠다" 엄마가 딸을 돌보는 시간보다 딸이 엄마를 돌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숨이 가빠질 정도의 힘겨움을 "혼자 가슴에서 삭혀야" 했으므로, "생각만으로도 온통 마음이 시리다" '엄마에게 실컷 어리광을 부려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한쪽 가슴에 뚫린 구멍'은 아직도 메워지지 않았다. '유년 시절에 받아야 할 사랑, 사춘기에 받아야 할 격려, 청년기에 받아야 할 위로'의 기억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 결핍감은 특히 음식에서 예민하게 도드라진다. 엄마가 해준 음식의 기억이 없기에 '엄마로부터 이어오는 손맛'의 세계에 가닿을 수 없는 작가에게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 참 많다는 지인'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작가에게도 '유일하게 기억하는 엄마의 맛'이 있으니, 엄마가 아프기 전, 생일에 만들어준 찰떡이다. ‘둘째 딸만을 위한 떡’, 그 ‘최고의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 뒤, 작가는 돌보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딸의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 주지 못해도 늘 딸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기에 이른다. 엄마가 자리를 지켜주었으므로 자신이 성장하고 자식을 키워낼 수 있었음을, "당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저 가슴 저민 울음을 흘렸음을",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지탱해주는 기둥'이 되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제 눈을 떴으므로 주변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반신이 불편한 이가 한 손을 휘저으며 수영할 때 사방으로 물이 튀자,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몸짓을 하는 그의 어머니가 다르게 보인다. '눈물'과 '고통'처럼 느껴졌던 물방울이 이제는 무지개로 보이는 것이다. 불편한 아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눈이 빛나고 두 다리에 힘이 실”리는 기쁨임도 보인다.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엄마가 생일 찰떡을 해주던 날 떠올랐던 무지개는 이제 작가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빛나지 않겠는지.    

◆ 한혜경 주요 약력

△서울 출생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 수필 등단(1998) △ 평론 등단(2002) △평론집 △글쓰기 이론서 △수필집 (4인 공저) 등이 있다.

♣물방울이 튄다-글/임병미

그가 뛰어들자 물이 크게 일렁인다. 이어서 그녀가 조용히 들어온다. 주변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가만히 서 있는 그에게 다가가 등을 다독이며 속삭인다. 그러자 용기가 나는지 수영을 시작하고, 그녀는 곁에서 따라가며 걷는다. 그는 몸의 반신이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한 손을 휘저을 때마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그녀의 마음이 급해진다. 이내 고개를 숙이며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한 몸짓을 한다. 물방울은 아랑곳없이 계속 튄다. 물방울들, 그녀의 눈물이다. 아니 그녀의 숨겨진 고통일지도 모른다. 왠지 그 물방울은.

뉴스가 나왔다. 제주의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들 사이에서 이상 행동을 하는 어미 돌고래가 화면에 보인다. 새끼를 숨 쉬게 하려는 듯 주둥이를 이용하여 수면 위로 올리지만 이내 떨어지고 다시 등에 올리기를 반복한다. 사실 그 새끼는 죽은 지 2주가 지났다고 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다. 새끼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알았겠지, 어미니까. 그래도 끝까지 새끼를 포기하지 못하는 어미 돌고래의 행동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모정이다. 이 시대에서 그 낱말은 빛이 퇴색되어 가고, 자식을 버리고도 돌아서서 웃는 어미도 있는데, 어쩌자고 그 말을 그리 품에서 놓지 못하는지...

지인 집으로 식사 초대를 받았다. 여러 음식 중 유독 맛있는 나물 반찬이 있다. 내가 잘 먹으니 집에 가서 먹으라며 싸준다. 조리법을 물어보자 엄마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그런대로 맛이 나왔다며 웃었다. 그 순간 '엄마처럼 잘하는구나' 라는 칭찬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행복해 보였다. 계량하지 않아도 적당한 간이 맞춰지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재주. 그냥 뚝딱뚝딱하는 것 같은데도 찰떡처럼 맛있는 맛을 내는 손. 엄마로부터 이어오는 손맛이다.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 참 많다는 지인이 부럽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아팠다. 분명 음식을 만들기는 했을 텐데, 지금까지 아련한 추억의 음식은 없다. 아, 나도 하나 생각난다. 엄마가 아프기 전이다. 내 생일은 음력 동짓달이다. 깨우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아침, 그날은 아버지 것 다음으로 뜬 하얀 쌀밥과 미역국이 내 차지였다.

엄마는 간밤에 찹쌀을 물에 불려 놓으셨다가 방앗간에서 빻아 오신 쌀가루로 떡을 만드셨다. 아궁이에 장작불이 타오르고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연신 뿜어져 나왔다. 친구와 놀다가도 풀방구리 생쥐 드나들듯 부엌을 들락거렸다. 육 남매 중에 어중간한 둘째 딸만을 위한 떡이었기에 신이 났었다.

밤새 하얀 눈이 내리고, 뒤안 장독대 항아리 위, 소쿠리 안에 찰떡은 살짝 얼어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엄마의 맛. 그날 이후로 나의 미각은 멈추었다.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는 그 최고의 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엄마와 딸로 함께 보낸 추억이 잘 생각 나지 않는다. 엄마가 딸을 돌보는 시간보다 딸인 내가 엄마를 돌보아야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마치 수영장 안 물속에서 오래 참기라도 하듯이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숨이 가빠졌다. 엄마를 돌보다가도 가끔 나의 숨이 차올라 허둥거렸다. 그러나 어디에도 방법은 없었다. 그저 혼자 가슴에서 삭혀야 할 뿐. 생각만으로도 온통 마음이 시리다.

유년 시절에 받아야 할 사랑, 사춘기에 받아야 할 격려, 청년기에 받아야 할 위로, 그것들이 내 손안에 통 쥐어지지 않는다. 분명 없지는 않았으련만. 나는 이런 뭔지 모를 감정으로 가끔 울적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 잡는다. 어미로서 내 새끼들에게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다. 내 안에 숨겨진 사랑까지 모두 긁어서...

그런데도 내 한쪽 가슴에 뚫린 구멍은 잘 메워지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붙잡을 수도, 따라갈 수도 없다. 참으로 유치하지만 나는 나에게 소원을 하나 말하라면 엄마에게 실컷 어리광을 부려보는 것이다. 어리광을 부리며 개구쟁이처럼 하루를 보내고 싶다. 내 일생에 가장 아름다운 그런 날처럼.

어미, 엄마라는 말은 참 그립고 따스하다. 그것은 자식, 새끼와 함께여야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젊은 나이에 아픈 둘째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들을 돌보느라 이웃 마을 할머님이 자주 오셨다.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운 우리는 할머님 품으로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면 할머님이 "아유, 내 새끼" 하며 안아주시고 치마를 걷은 안주머니에서 알록달록 '옥춘당' 사탕을 꺼내 주셨다. 얼마나 좋았던지. 내 마음도 사탕처럼 달콤하고 예쁘게 물들었다. 엄마가 아닌 할머니에게서지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이만큼 성장하고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그 자리를 지켜주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내가 아파서 눈물 흘릴 때 그 눈물을 닦아 주거나 안아준 기억은 없지만, 돌아보면 늘 엄마가 거기 있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당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저 가슴 저민 울음을 흘렸음을.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라는 것을. 그런 마음이 나를 성장시키고 지탱해주는 기둥이 되었음을.

생각에 잠겨 있던 내게 갑자기 물방울이 튄다. 어머니와 아들이 수영하며 내 옆을 지나간다. 아들 옆에서 유수풀을 걷는 그녀의 눈이 빛나고, 두 다리에 힘이 실린다. 그가 수영하며 튀기는 물방울은 무지개이다. 그 일곱 개의 색깔마다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무지개를 바라보는 내 가슴이 뛴다. 그날, 엄마가 찰떡을 해주던 날에도 무지개가 떴었다. 나는 아직도 무지개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