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5] 이경은의 독서에세이...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선'

데일리한국 2024-11-02 09:54:46
이경은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이경은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은 '큰 바위 얼굴'이다. 그만큼 저 작품이 유명하다는 뜻이겠지. 책도 읽기 전에 어려서부터 들은 이 내용은 그야말로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절대 의심할 수 없는 작품, 인생 교과서이다.

어느 날, 궁금증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다른 작품은 어떨까. 수소문하니 이 책이 있었다. 지금은 쉽게 살 수 있지만 그때는 일반 열람실에는 없어서, 특별보관 코너에 가서 한 시간 안에 보고 나와야 했다. 낡아서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운 책을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읽어 내려갔다. 시공간의 제한이 있으니 오히려 무한의 즐거움이 느껴졌다. 마치 금서를 들춰보는 듯 짜릿함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그때 읽은 두 작품이 '웨이크필드'와 '데이비드 스완'이다. 워메, 그 충격이라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의 집과 아내를 떠나, 20년을 혼자 산 남자의 이야기에 나는 순식간에 빠져 들었다. 런던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매일같이 자신의 집을 관찰하고, 어느 날 저녁 집을 떠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것처럼 태연하게 귀가해, 죽을 때까지 다정한 남편으로 산 인류 역사상 가장 기이한 남자. 처음엔 그저 일주일 정도만 가족이라는 삶에서 비어 있거나 부재하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20년이 지나가 버렸다. 나는 그 사이에 ‘낯설음’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점점 자신의 집도 아내도 낯설어진다는 데에 웨이크필드는 당황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은근히 공감이 가고 몰입이 된다. 말도 안 되는 그의 행동에 마음 한 가닥이 슬쩍 얹힌다. 나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하나는 공상으로 끝났고, 하나는 실화 같은 소설로 남았지만…. 우리는 가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루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꿈속의 세상을 두 손에서 놓지 못한다. 공상이 때론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에.

'그가 잠든 사이에'라는 부제가 붙은 '데이비드 스완'도 만만치 않았다. 허나 앞의 충격이 너무 세서인지 외려 달콤하게 느껴졌다. 다만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기회'가 머리맡에 와 있는데 잠만 쿨쿨 자는 태평한 그가. 소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얼른 흔들어 깨우고 싶은 충동이 일만큼. 태평함이 그의 운명이다.

에드거 앨런 포와 허먼 멜빌과 함께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너세니얼 호손은 약간 비현실적이라도 감수성과 상상력이 깃든 이런 작품에서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물론 '주홍글씨'의 'A'라는 표식은 우리의 가슴에 깊은 통증을 느끼게 하는 강렬한 작품이지만, 나에겐 이 책 안의 두 작품이 더 깊게 새겨져 있다. 이제는 손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 짜릿함이 덜 하려나.

뜨거운 홍차에, 꿈같은 ‘Mariage D’Amour’를 들으며 낯선 침대에 누워서 보는 책!

◆이경은 주요 약력

△서울 출생 △계간수필(1998) 등단 △수필집 '내 안의 길' '가만히 기린을 바라보았다' '주름' 외 6권. △그 중 수필 작법집 '이경은의 글쓰기 강의노트', 포토에세이 '그림자도 이야기를 한다', 독서 에세이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 △디카 에세이집 '푸른 방의 추억들' △한국문학백년상(한국문협 주관), 율목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숙명문학상 등 수상 △현재 방송작가, 클래식 음악 극작가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