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오전 9시41분 폭우 적색경보 뒤 오후 8시께 늑장 긴급문자
"최악 상황 뒤 경고 보내면 무슨 소용" 주민들 분통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스페인 남동부에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쏟아진 기습 폭우로 숨진 피해자가 205명까지 늘어나면서 당국의 미흡한 초동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다.
1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BFM TV 등에 따르면 재난이 발생한 당일 오전 9시41분 스페인 기상청은 발렌시아 지방의 폭우 경보를 가장 높은 적색 단계로 상향했다.
적색경보가 내려지면 일상적인 활동이 크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가급적 이동 자제가 권고된다.
기상청 대변인은 이후 정오께에야 영상 메시지를 통해 다시 적색경보 상황을 알리며 주민들에게 집이나 직장 등 건물 내에 머물 것을 촉구했다.
오후 1시14분께, 발렌시아 카를로스 마손 주지사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폭우 세기가 오후 6시께엔 다소 약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오후 4시30분부터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방 정부는 오후 5시에야 재난 안전 대책 회의를 소집했다. 이때까지도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재난 안내 문자는 발송되지 않았다.
이후 8시30분까지 엄청난 양의 물 폭탄이 쏟아져 인근 강과 하천이 급속도로 범람하면서 퇴근길 정체된 도로의 차 안에 있던 시민들이 꼼짝없이 희생됐다. 사망자의 상당수가 차 안에서 발견된 이유다.
지역 주민들에게 전체 긴급 재난 안내 문자가 발송된 시각은 오후 8시12분으로,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다.
기상청의 적색경보 발령 시점부터 당국이 긴급 재난 경보를 띄우기까지 10시간 넘게 걸린 셈이다.
지역 주민들은 당국의 뒷북·무능 대응에 인명 피해가 커졌다고 비판했다.
변호사 이사벨 디아즈는 엑스에 "당국의 대응이 부주의하고 무책임했다"며 "담당자들의 무능 탓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성토했다.
발렌시아 시의원 출신인 산드라 고메즈 유럽의회 의원도 엑스에 남편 역시 물에 잠긴 고속도로에서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다면서 "폭우가 한창일 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60명 넘게 사망자가 나온 파이포르타시의 주민 카르도나 테루엘은 "예방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차를 타지 말라는 등 그 어떤 말도 없었다"며 "최악의 상황이 닥친 뒤에야 경고를 보내면 무슨 소용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마드리드 중앙 정부도 위험 상황을 분석하고 비상사태 수준을 결정할 책임은 지방 당국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마손 주지사는 "중앙 정부에서 표준화하고 조정한 프로토콜을 따랐다"며 자신과 관리들이 기상학자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기후 변화 전문 정치학자인 크리스티나 몽헤는 "이런 기후 현상은 앞으로 더 빈번해질 텐데 우리는 이에 준비되지 않았다"며 적색경보가 발령되면 즉각 이동을 중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세계기상기구(WMO) 관계자 역시 이날 유엔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스페인 대홍수와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효과적인 조기 경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필요한 이들에게 초기 경보가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초기 경보가 사전 조치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스페인 당국이 주민에게 재난 안전 문자를 너무 늦게 보낸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는 스페인 당국이 검토해야 할 문제"라며 직접적 답변을 피했다.
s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