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 기념한다더니…남원 만인의총에 친일 전시물 가득"(종합)

연합뉴스 2024-11-02 00:00:56

시민단체·도의원 "만인의사 두 번 죽이는, 묵과할 수 없는 일"

국가유산청 150억 들여 최근 개관…만인의총 "특별한 의도 없어"

역사문화관 글에 있는 임진전쟁·정유전쟁 표현들

(남원=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전북 남원지역 시민단체인 시민의숲과 임종명 전북도의원(남원2 선거구)은 "최근 개관한 만인의총 역사문화관에 친일 글과 전시물들이 대거 설치됐다"며 1일 시정을 촉구했다.

만인의총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해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민관군 1만여 명을 모신 무덤으로, 1981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임 의원과 시민의숲은 먼저 역사문화관의 각종 글에 임진왜란을 임진전쟁, 정유재란을 정유전쟁이라 각각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란(亂)이 전면적 무력행사라는 점에서 전쟁과 비슷한 의미지만, 그동안 일방적 침략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왜란이라고 써온 것과 배치된다고 임 의원은 설명했다.

임진전쟁, 정유전쟁이라는 용어는 정유재란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비롯해 당시 남원성을 지키다 순절한 만인의사를 설명하는 글 등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당시 살육의 현장이었던 남원성 전투를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웠던 현장'이라고 한 것도 일본의 시각을 반영한 반민족적 표현이라고 봤다.

정유재란을 세계대전으로 표현한 전시물

전시실 대형 벽면에는 정유재란을 세계대전이라고 정의한 'WORLD WAR 1597'이라는 문구를 부착해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시민의숲은 "세계대전은 여러 동맹국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이라며 "이것 역시 일본의 침략이라는 성격을 희석하는 친일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이란 말은 우리가 오랫동안 일관적으로 써왔던 것"이라며 "이를 일본의 시각으로 정당화한 전쟁이란 표현으로 바꿔 수차례에 걸쳐 쓴 것은 실수가 아니라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침략의 선봉장으로 남원성 서문 공격을 맡은 장수였던 고니시 유키나가 가문의 문장(紋章·상징적인 표지)을 전시실 바닥에 새겨넣은 점도 친일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 문장은 '고니시 유키나가 가문의 문장'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으며 별도의 조명시설까지 설치해 부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왜군이 우리 백성을 학살했던 조총을 형상화한 전시물과 우표 등을 전시한 것 역시 만인의총의 성격을 고려할 때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역사문화관의 조총 형상물과 왜장 가문의 문장

역사문화관은 국가유산청이 만인의사의 충절을 기념하겠다며 150억원가량을 들여 지난 9월 남원 만인의총에 만든 전시관이다.

임 의원과 시민의숲은 "정작 당시의 참혹한 참상에 관한 기록이나 전시물은 없고, 일본의 침략을 미화하는 친일적 요소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며 "만인의사를 두 번 죽이는 황당한 일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문제로, 윤석열 정부의 역사적 인식과 맞닿아 있다"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만인의총 역사문화관

이에 대해 만인의총 관계자는 "뉴라이트 사관에 근거해 이뤄진 일은 아니며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면서 "일부 지적된 표현과 전시물은 수정·제거했으며,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추가로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doin1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