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코미디 시리즈 연출한 권해봄 PD 인터뷰
"통념 비트는 반전 있어야 성공한 코미디…예술과 닿아있죠"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흑백요리사'처럼 대박 난 건 아니지만, 순수 코미디 콘텐츠로 이 정도 성과를 낸 것에 대해선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 예능 시리즈 '코미디 리벤지'를 연출한 권해봄 PD는 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을 통해 코미디도 시청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코미디 리벤지'는 한국 코미디의 대표 주자들이 더 많은 사람을 웃기기 위해 경쟁하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공개된 '코미디 로얄'의 시즌2 격이다.
권 PD는 "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 코미디 콘텐츠는 유병재, 박나래 씨 등의 스탠드업 코미디쇼밖에 없었는데, '코미디 로얄'과 '코미디 리벤지'를 통해 K-코미디의 외연을 넓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코미디 리벤지'는 지난 15일 공개를 앞두고 출연자 중 한 명인 이진호가 불법 도박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서 난관을 맞았는데, 앞선 시즌보다 매끄러운 만듦새를 선보이며 선방했다는 평을 받는다. 공개 3주 차에 접어든 31일을 기준으로 여전히 넷플릭스 국내 시리즈 10위권 내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권 PD는 "프로그램 제작발표회를 시작하기 30분 전에 소식을 듣고 많이 당황했다"며 "이진호 씨는 김용명, 문세윤 씨와 팀을 이뤄 프로그램에 출연한 터라 편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부분이어서 더 아쉬웠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코미디 리벤지'는 앞선 '코미디 로얄'과 달리 마스터(팀장)와 영건(후배 코미디언) 구분 없이 여섯 팀을 이뤄 경쟁했다. '코미디 로얄'에 출연했던 문세윤, 황제성, 이상준, 이용진, 곽범 등이 그대로 출연했고 박나래, 김용명, 신기루, 임우일, 김해준 등이 새로 합류했다.
권 PD는 "과거처럼 채널 3~4개를 두고 취향대로 골라보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요즘 시청자들은 훨씬 취향이 세분돼있다"며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코미디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내 MZ세대의 취향을 겨냥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방송에서 출연진은 3개 라운드를 거치며 개그 경쟁을 펼쳤다. 상대방을 구워버리는 듯한 독한 농담으로 디스(공개적으로 공격)하는 '로스팅 배틀', 주어진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극을 만드는 '임프랍 배틀', 각자 다른 캐릭터로 분장하는 '캐릭터 배틀' 등이 펼쳐졌다.
그는 "코미디는 다른 장르에 비해 특히 문화적 장벽이 높고, 세대 간 취향이 뚜렷하게 갈리지만, 그런데도 잘 만든 코미디는 세대를 아우르는 웃음을 자아낸다"며 "예를 들면 박나래 씨가 영화 '파묘'의 '뱀여인'으로 분장했던 게 성공한 코미디 같다"고 꼽았다.
"코미디는 예술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반전의 미학이 중요하죠. 통념을 비트는 코미디가 좋은 코미디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박나래 씨는 '파묘' 속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뱀여인'을 내세워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웃길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시청자 반응을 꼼꼼하게 살피는 편이라는 권 PD는 "코미디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는 반응이 가장 반가웠다고 했다.
그는 "'코미디 로얄'에서는 좋은 코미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코미디 리벤지'를 통해선 코미디언들의 애정과 열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들이 웃기려고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하는지 보여주려 했기에 코미디언을 다르게 보게 됐다는 말이 듣기 뿌듯했던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권 PD는 tvN '화성인X파일', '렛츠고 시간탐험대' 조연출을 거쳐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모르모트PD로 얼굴을 알렸다. 출연진의 모르모트(기니피그)처럼 방송에 끌려 나와 온갖 실험을 당하는 친근한 매력을 뽐내며 활약했다.
권 PD는 "요즘에는 웃음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이 없어졌는데, 저는 코미디와 코미디언들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취향이 세분된 시대이지만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코미디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코미디 리벤지' 속 일부 장면들이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하며 공감을 끌어내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타율을 조금씩 높여가는 게 과제"라고 밝혔다.
"코미디언들과도 아이디어로 대결하는 개그를 보여주자는 얘기를 많이 해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욕설을 내뱉는 게 더 웃기기 쉽더라도, 그런 원색적인 코미디 말고 통념을 뒤집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우선시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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