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이지예 기자] 거야(巨野)가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개입 정황이 담긴 녹취록 파장에 올라타 '탄핵'을 벼르고 있다. 정부·여당은 당혹한 분위기가 역력한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까지 먼저 거론하며 윤 대통령 엄호에 나섰다. 이번 사태가 탄핵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한 것인데, 2016년 탄핵전야의 기시감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다.
1일 여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단 당의 '관망모드'를 깨고 대응에 나섰다.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녹취를 탄핵의 '스모킹건'(결정적 물증)으로 연결하는 시선이 적지 않자, 여권은 우선 윤 대통령의 행위가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점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 여당 간사 유상범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행위로 기소된 사례를 거론하며 "당 공천관리위원에게 공천 리스트를 전달하고 종용한 혐의로 기소된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심과 3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된 사실은 왜 말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선거 개입 혐의에 무죄 판결을 받은 근거에 비춰 윤 대통령도 '무죄'라는 주장이다.
유 의원은 "공관위에 의견 개진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의견 제시는 법률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 법원 판결에 의하여 명확히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또 "윤 대통령은 (명 씨와 통화한) 2022년 5월 9일 당선인 신분이었고, 대통령 인수위법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원도 아니어서 공무원 의제 규정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공무원의 당내 경선 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상 저촉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해당 법안을 정성호, 박찬대, 민영배, 박성준 의원 등 민주당이 개정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공무원에 준하는 지위로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자기모순이라는 게 확인된다"고 비판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치적, 법적,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 될 게 없는 녹취내용이라는 것을 대통령실에서 분명히 확인해드린다"며 "대통령의 녹취가 '누가 봐도 명백한 불법 공천개입 사실'이라고 규정하고 단정 지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국민께 직접 소명하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선 "어떤 상황에서 나온 언사인지 연결이 안 된다"며 "(발언만) 딱 떼어서 하면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 野, 탄핵 정국 장외로…李 선고 앞 尹 탄핵 나설까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등이 31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녹취 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민주당은 녹취록의 추가 공개를 예고하며 장외 투쟁으로 탄핵 여론을 끌고 갈 방침이다. 윤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앞둔 11월 김건희 여사 리스크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맞물리면서 시작된 여야의 주도권 싸움으로 정국은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특히 이 대표의 11월 15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야권의 대통령 탄핵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살된다. 탄핵안 발의는 재적의원의 과반(150석)으로 170석을 보유한 민주당 단독으로도 가능하다.
민주당은 전날 윤 대통령이 공천을 지시했던 사실을 명씨에게 말하는 육성 파일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보궐선거를 앞둔 2022년 5월 9일 명 씨에게 "공관위(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건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통화 다음날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은 실제 경남 창원의창에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윤 대통령이 공천개입·거래로 헌정질서를 흔드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게 민주당의 시각이다.
당내 친윤(친윤석열)계와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을 엄호하고 있는 가운데 국힘 지도부는 아직까지 침묵을 유지한 채 관망하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묻는 말에 "당 차원에서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곳이 법사위다. 법사위원들이 논의하며 집약된 의견을 어제 말씀드린 걸로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 이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녹취록을 포함한 현안과 관련해 용산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