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 기업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인수·합병(M&A)은 사활을 건 전쟁이다. 1주라도 더 확보하고자 온갖 복잡하고 다양한 지분확보 수단들이 동원된다. 주가는 현기증이 날 만큼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그 과정에서 다치는 건 개미(일반 소액투자자)들뿐이다.
영풍·MBK와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의 유상증자가 논란이다. 자사주를 공개 매수해서 소각한다더니 다시 증자로 주식 수를 늘린단다. 주식 수가 늘면 주주들의 지분가치는 떨어진다. 공개 매수 신고서에 증자 계획을 언급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금융당국이 부정거래 소지가 다분하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증자로 마련한 돈은 대부분 자사주를 살 때 빌렸던 돈을 갚는 데 쓸 모양이다. 이쯤 되면 고려아연 측에 높은 이자를 받고 공개매수 자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만 승자라는 업계의 뒷말이 그럴듯해 보인다.
동학개미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두는 사업 재편을 추진했던 두산에너빌리티는 합병비율이 투자자들의 지분가치를 훼손한다는 반발에 부딪쳐 계획을 수정했다. 미국 증시의 대형기술주들인 매그니피센트 세븐(M7) 주가는 호조인데 국내 증시 시가총액 1위의 국민주(株)인 삼성전자는 최저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는 '반도체 업계에 겨울이 온다'며 목표주가를 끌어내리더니 이내 평가가 잘못됐다며 말을 바꿨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실적이 부진해도 주가가 떨어져도 무조건 '매수' 아니면 '보유'를 권한다. 투자소득에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는 내년 시행을 강행한다는 건지, 아니면 연기인지 또는 폐지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금융당국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는데 밸류업 지수는 시장의 혹평을 받았고 지수 시행 첫날 코스피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주식시장의 고객예탁금은 주식을 매수하려고 주식계좌에 넣어두거나 주식을 팔고 다른 주식을 사기전에 대기하고 있는 자금이다. 지난 4월 60조원에 육박했던 예탁금은 지난달 말 50조원 밑으로 급격히 줄었다. 미국 증시 등으로 투자 대상을 바꾸거나 아예 투자를 포기하는 투자자들이 늘었다는 해석이다. 증시는 기업이 주식·채권 등을 통해 투자할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 조달의 창구이고 투자자들은 주식 투자를 통해 건전한 기업을 육성하고 이익을 얻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 했던가. 우리 증시가 동학개미들을 밀어내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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