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혐의' 中교민 깜깜이 수감 왜?…수사기관에 유리한 현지법

연합뉴스 2024-11-01 10:01:14

검찰 결정으로 최장 7개월 구속 가능…구치소 밖 '구금'은 별도 계산

제한된 변호인 조력에 진술거부권 없어…'형법상 간첩죄' 적용시 징역형 가능성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간첩 혐의로 중국 당국에 구금돼있는 한국 교민이 1년 가까이 기약과 정보가 없는 '깜깜이 수사'를 받게 된 것은 수사기관에 크게 기울어진 중국 형사법 시스템 때문이다.

A씨 가족은 지난달 30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중국 반도체 업체들에서 근무해온 A씨가 작년 12월 중국 국가안전부에 체포됐다고 전했다.

가족은 A씨가 체포된 이후 호텔에서 조사받고 있다는 통보만 들었을 뿐 그 호텔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고, 올해 A씨가 5월 정식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된 뒤로도 드문드문 편지로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당국은 A씨가 중국 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기술을 한국으로 유출했다는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가족은 수사기관으로부터 A씨의 구체적인 혐의를 듣지 못했다. 사건 자료를 열람한 중국 변호사는 "중국 법상 사건 내용을 가족을 포함한 제3자에게 알릴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중국의 이같은 장기 구금은 한국 등 세계 다수 국가의 수사 방식과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중국 형사소송법 156조는 "범죄 혐의자 체포 후 구금(羈押·구속) 기한은 2개월을 넘을 수 없다. 사안이 복잡하고 기한 내 사건을 종결할 수 없다면 상급 인민검찰원의 승인을 얻어 1개월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렇게 보면 구금 기한은 3개월 이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같은 법 158조는 '중대 사건' 등의 경우 검찰 결정으로 구금을 2개월 더 늘릴 수 있게 정했다.

바로 아래 159조는 "10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범죄 혐의자에 대해서는 158조에 규정된 연장 기한을 채워도 조사를 종결할 수 없는 경우, 검찰 승인 아래 다시 2개월을 늘릴 수 있다"는 단서도 달았다. 최장 7개월까지 구속 가능한 셈이다.

지난달 28일 A씨 사건이 알려진 뒤 세간에서는 작년 7월 중국의 개정 반(反)간첩법 시행 후 한국인이 처음 구속된 사례라는 점에 주목했지만, 실제 A씨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법조 중에 훨씬 중대한 것은 '형법상 간첩죄'라는 것이 한국 법조계의 중론이다.

행정법 성격이 강한 반간첩법은 국가안전부의 행정 처분(과태료·과징금·15일 이내의 행정구류 등)을 위한 법률이다. 더 엄격하고 구체적인 구성요건을 갖춘 형법은 수사·재판을 통해 형사처벌(징역형 등)을 할 수 있게 한다.

중국 형법은 해외 기관·조직·인원을 위해 국가 기밀이나 정보를 불법 제공한 사람에 대해 5∼10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도록 한다. 사안이 중대하면 10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무기징역형, 경미하면 5년 이하 징역형 등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한국의 경우 경찰·검찰 수사 단계 구속 기간은 최장 30일(국가보안법 사건은 최장 50일)이고 구속과 연장 모두 법원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중국은 검찰 결정만으로 그보다 훨씬 긴 기간을 구금할 수 있다.

다만 A씨가 작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호텔에 갇혀 조사받은 시기는 애초 '구금'에도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구치소에 수감된 올해 5월부터가 구금 기간이라는 것이다.

중국 형사소송법 75조에 규정된 '주거 감시'(監視居住)는 피의자·피고인의 집이나 별도의 장소에서 집행 가능한 구류 방식이다.

국가 안보 범죄나 테러 범죄에 연루된 사람은 자택이 아닌 곳에 갇힌다. 주거 감시는 별도의 기간 제한이 없고, 재판 결과에 따라 나올 수 있는 징역형을 당겨쓰는 형식이다.

중국에서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에도 제약이 많다.

중국 형사소송법 37조는 변호사가 수사 기간 피의자를 도울 수 있다고 명시했으나 '국가 안전(안보) 위해 범죄'나 '테러 활동 범죄' 등 사건은 수사기관의 허가가 있어야 변호인 접견이 가능하다.

또 안보 문제에 연루된 의뢰인을 대리하는 변호인은 범죄 준비·실행을 포착할 경우 즉시 사법기관에 알릴 의무가 있고, '국가 기밀과 관련한 증거나 사실 배경' 등은 의뢰인의 가족에게도 언급할 수 없다.

피의자로서는 변호인이 언제든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으니 자기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에도 제약이 생긴다. 이 역시 한국 사법 환경과는 다른 제도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사실상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장기간 구금된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시인'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사기관이 강압적으로 행동해도 그것을 감시·제지할 방법 역시 구조적으로 마땅치 않은 데다, 피의자에게 '사실대로 답할 의무'는 부과하면서도 진술거부권은 주지 않는 중국 형사소송법의 특징 때문이다.

A씨의 재판이 언제 시작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이 절차대로 사건을 처리할 경우 이르면 1개월여 안에 재판이 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1일 "사건이 검찰로 송치됐다면 법적으로 중국 검찰은 사건 이송 후 1개월(15일 연장 가능) 안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며 "검찰의 보충 수사 등 변수가 있으면 늦춰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10년 넘게 제2형 당뇨병을 앓은 A씨는 구치소에 들어간 뒤 약 복용은 물론 매일 필요한 혈당 체크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가족은 전했다. 중국 구치소 측은 "한달에 두세 차례 혈당 측정을 한 결과 혈당 수치가 정상이어서 약 지급이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다른 법조인은 이를 두고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x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