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명창 이경숙의 삶 조명…"'줄타기' 연출에 공 들여"
"윤진철 명창 작창으로 소리 깊이 더해"…내달 14∼21일 국립극장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이날치전'에서는 '정년이'의 재미는 물론 깊이 있는 예술성까지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국립창극단은 3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음 달 14∼2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조선 후기 8대 명창 중 한 명인 이경숙의 삶을 조명한 신작 '이날치전'을 상연한다고 밝혔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로도 친숙한 이날치는 명창이 되기 전까지 줄광대의 삶을 산 이경숙(1820-1892)의 별명이다. 국립창극단은 이경숙의 행적을 기록한 사료가 많지 않은 탓에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 창극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극본을 쓴 윤석미 작가는 "사료가 많지 않아 고민하다가 새로운 이날치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극본을 썼다"며 "돌아가신 이경숙 명창이 '내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조선 후기 예술인의 삶을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특히 동서양이 비슷한 시기에 신분사회가 무너진 현상에 주목해 극본을 썼다고 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물려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이날치의 주체적인 삶의 태도에 작품의 초점을 맞췄다. 윤 작가는 "동서양의 신분사회가 무너지는 시점에 국악에선 판소리가 나오고 서양에선 오페라가 등장했다"면서 "그런 시대 분위기를 반영해 머슴으로 태어난 이날치가 신분을 바꾸기 위해 소리꾼이 되고자 한다는 설정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줄광대와 고수, 소리꾼 등 다양한 예술가의 삶을 산 이경숙을 조명하는 작품인 만큼 줄타기와 풍물, 탈춤, 사자춤 등 다양한 전통연희가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연출을 맡은 정종임 창작집단 '타루' 예술감독은 "판소리를 중심으로 우리 전통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신명 나는 놀이판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특히 이제는 명맥이 끊겨 공연을 찾아보기 힘든 '줄타기' 연출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는 "작품의 첫 장면이 줄타기여서 관객이 극장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줄타기 장치부터 보게 될 것"이라며 "무대 위에서 줄타기를 구현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 리허설 이후 보완해서 본 공연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판소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국극 배우의 삶을 그린 tvN 드라마 '정년이'를 능가하는 작품을 내놓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그는 "'정년이' 배우들이 판소리를 하는 영상을 봤는데 (소리의 깊이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보였다"며 "'이날치전'은 판소리 고법 이수자인 윤진철 명창의 뛰어난 작창을 통해 '정년이'보다 훨씬 깊은 소리를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도 "국극이든 창극이든 작품 완성도를 위해 제작진과 출연진이 노력하는 것은 다 같다"면서도 "'이날치전'에서는 재미를 더해서 깊이 있는 예술성까지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신작에 깊이를 더해줄 배우들의 열연도 기대된다. 폭넓은 연기로 국립창극단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이광복과 JTBC 음악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4'에 출연한 김수인이 이날치 역을 맡았다.
이광복은 "한 시대를 풍미한 명창을 연기하는 것이 부담이면서도 소리꾼으로선 영광"이라며 "고집스럽고 힘 있는 소리로 우리 전통소리의 정수를 표현해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수인도 "전설과도 같은 분을 제가 감히 연기하게 돼 영광스럽다"며 "이날치 명창의 시대를 그대로 옮기면 사극이 되겠지만, 지금을 사는 이날치를 연기하면 현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