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못 먹을지도] ⑦ 표백제 뿌린 듯…하얗게 변한 제주바다 산호

연합뉴스 2024-10-27 09:00:38

올여름 급작스러운 백화현상…고수온·저염분수 영향"

[※ 편집자 주 =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가져온 변화를 느끼는 데는 둔감합니다. 언제든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미 밥상에는 뚜렷한 변화가 왔습니다. 어릴 적 식탁에서 흔히 보이던 단골 국과 반찬이 어느새 귀한 먹거리가 됐습니다.밥상에 찾아온 변화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짚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기사를 송고합니다.]

하얗게 변한 빛단풍돌산호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올해 들어 제주 앞바다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해양생물을 꼽자면 단연 '산호'다.

연산호는 녹아내렸고, 경산호에는 색이 하얗게 변하는 '백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명체가 공생하는 산호초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서 생태계 다양성이 축소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보도한 [내일은 못 먹을지도] ⑥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 미기록 어종 '줄줄'[https://www.yna.co.kr/view/AKR20241018071900056]에 이어 기자가 직접 목격한 제주 바닷속 생태계 변화를 소개한다.

섶섬 바닷속 하얗게 변한 빛단풍돌산호

◇ 제 색깔 잃은 산호…표백제 뿌린 듯

최근 제주 서귀포시 범섬과 섶섬, 문섬 바다에 들어가자 알록달록한 색을 뽐내는 물고기가 아닌 암반을 뒤덮고 있는 '흰 반점'이 눈앞에 펼쳐졌다.

흰 반점으로 절반 이상 뒤덮인 암반은 마치 하얀 새똥으로 얼룩진 갯바위 같았다.

가까이 가보니 이 반점은 짙은 초록빛 몸체는 사라지고 흰 뼈대만 남은 빛단풍돌산호였다. 바로 옆 암반에 있던 그물코돌산호도 표백제를 뿌려놓은 듯 하얗게 색이 변해있었다.

돌산호는 열대·아열대 바다에 분포하는 경산호로, 연산호와는 달리 단단한 뼈대가 있다.

직접 잠수해 관찰한 섶섬 수중 10m 안팎에서는 연산호나 해조류는 보기 힘들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연산호는 그마저도 넓고 편평하게 자란 돌산호에 점령당해 떨어져 나간 것이 많았다.

뼈대 드러낸 그물코돌산호

고수온에 신음하는 연산호

뼈대 드러낸 빛단풍돌산호

빛단풍돌산호에 자리 빼앗긴빛 연산호

색이 변한 것은 돌산호만은 아니었다.

돌산호 옆으로 얼굴을 삐죽 내민 말미잘도 하얗게 탈색돼 마치 흰 목이버섯 같은 모습이었다.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흰동가리를 볼 수 있는 섶섬 앞의 수중 관측 포인트인 '작은한개창'을 찾자 촉수가 하얗게 변한 큰산호말미잘이 보였다.

얕은 수심 산호초 해역 말미잘 사이에 서식지를 만들어 공생하는 흰동가리는 제 색을 잃은 말미잘 사이를 헤엄치고 있었다.

함께 입수한 다이버들은 "올해 여름 급작스럽게 산호 백화현상이 확산했다"며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 본다. 흰동가리 서식에도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문섬 주변 바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야가 좋지 않았지만, 바닷속 암반에 붙어 하얗게 색이 변한 빛단풍돌산호만은 선명히 보였다.

수중 10여 m 지점을 내려가자 연산호인 분홍바다맨드라미가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기도 했다.

연산호 군락지로 유명한 범섬 앞 바닷속에는 녹아내릴 듯 처지다가 결국 암반에서 떨어지거나 곧 떨어질 듯 위태롭게 붙어있는 개체도 여럿 발견됐다.

펄펄 끓는 제주바다…'니모' 둥지 말미잘도 집단폐사

◇ 산호 이상현상 원인으로 '고수온·저염분수' 지목

전문가들은 산호 이상 현상이 일어난 원인으로 올해 유난히 높았던 수온을 꼽는다.

수온에 민감한 산호는 바다가 뜨거워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표면을 감싸고 있는 공생조류를 배출한다.

산호 표면에 붙어있는 이 공생조류는 원래 하얀색인 산호에 아름다운 색을 입힐 뿐만 아니라 광합성을 통해 산호에 영양분을 공급해준다.

공생조류는 수온이 평년보다 1∼2도 높아진 상태가 한 달 반에서 두 달간만 지속돼도 산호를 떠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이 발표한 '2024년 고수온으로 인한 산호충류 이상 현상' 이슈 리포트에 따르면 실제 산호 백화현상이 확인된 섶섬과 문섬, 범섬 주변 해역의 올해 8월 평균 표층 수온은 30도로 지난해보다 무려 2도나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열대 바다에서도 서식하는 경산호마저 견디기 힘든 수온이었던 것이다.

'파란'은 고수온뿐만 아니라 저염분수도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바닷물 염분이 낮아지면 산호 등 정착성 저서동물의 삼투압 능력이 저하돼 생존에 큰 위협이 되는 데, 올해 중국 남부지역 집중호우로 양쯔강이 넘쳐 바닷물과 섞이면서 제주해역에 저염분수가 발생했다.

윤상훈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전문위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른 시일 안에 서식 환경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산호가 다시 공생조류를 흡수하며 살아날 여지도 있다"며 "하지만 이달 들어서도 수온이 지난해보다 2∼3도 높다. 쉽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10m 이내 얕은 수심에 사는 산호는 이번 충격으로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전문위원은 "2018∼2019년 8월 서귀포시 마라도·가파도 해역 수온이 24∼25도까지 높아지면서 감태 등 해조류가 대량 폐사했고 불과 5∼6년 만에 또다시 큰 수온 변화로 바다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며 "제주 바다 고수온 대응 해양생태 민관 특별조사단을 구성 등을 통해 변화하는 생태계를 정밀 조사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ragon.m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