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픽!] 나를 고립시키는 단짝 친구…'잠겨죽어도'

연합뉴스 2024-10-27 00:00:39

웹툰 '잠겨죽어도'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외딴섬에 사는 10살짜리 남자아이가 우연히 동굴에서 또래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인어를 발견한다.

둘은 친구가 되고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지만, 아이의 이사로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

몇 년 뒤 아이의 화장실 세면대에서 인어가 불쑥 얼굴을 내민다. 반가움도 잠시, 아이는 어디서든 나타나 유일한 친구가 될 것을 강요하는 인어가 조금씩 무서워진다.

'잠겨죽어도'는 주인공 혜성의 어릴 적 단짝 친구였던 인어가 6년 뒤 그를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웹툰이다.

인어와 사람의 우정이라는 환상적인 소재로 시작하지만, 이 웹툰의 장르는 스릴러다.

인어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인 혜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의 주변 사람들을 없애나간다.

처음에는 혜성을 괴롭히던 외숙모가 사라지고, 그다음에는 사채업자 두 명이 욕조와 이어지는 깊은 바다에 빠져 익사한다.

종국에는 자신만 특별하게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며 혜성의 친한 친구까지도 물속으로 끌어들인다.

인어의 집착과 속삭임 속에서 혜성은 점점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고립되기 시작한다. 하나뿐인 가족인 여동생과도 멀어지고 학교에서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인어가 그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차츰 자신만 안아주는 인어의 품이 편하다고 여기게 된다.

웹툰 '잠겨죽어도' 한 장면

인어가 혜성을 고립시키고 점점 장악하는 과정은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신만이 진짜 친구라고 주장하면서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고, 다정한 듯하다가도 원망의 말을 쏟아낸다.

혜성도 처음에는 두려움 속에 인어의 요구에 맞춰주다가, 나중에는 합리화를 거듭하며 인어의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

물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공포와 적절히 연결했다.

인어는 욕조와 세면대, 운동장의 비 웅덩이 등 물이 조금이라도 고여있는 곳에서 손을 뻗으며 등장하고, 이 때문에 혜성은 비 오는 날을 가장 두려워한다.

모든 원흉으로 인어가 지목되지만, 가끔은 이 모든 것이 혜성의 환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남겨놨다.

인어를 직접 본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실종됐고, 유일한 증거는 인어와 나눈 대화의 녹취록뿐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이정하의 시 '낮은 곳으로' 속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너를 위해 나를 /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 잠겨 죽어도 좋으니 / 너는 /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는 시구를 읽다 보면 인어의 집착 속에서 서서히 질식하는 혜성의 공허한 눈이 떠오른다.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이다.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