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남성 중심을 넘어서…신간 '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

연합뉴스 2024-10-24 14:00:33

여성으로는 처음 필즈상을 수상한 마리암 미르자카니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피타고라스 정리는 수학사에서 유명한 정리 중 하나다. 직각삼각형 빗변 길이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길이를 제곱한 뒤 더한 것과 같다는 내용이다. 피타고라스(BC 570~BC 495)가 처음으로 증명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보다 먼저 이를 다룬 책이 있다. 중국의 '구장산술'이다.

'구장산술'은 기원전 1천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곡물과 노동력, 시간 같은 자원을 관리하고자 수학을 배워야 하는 정부 관료들을 위한 입문서로 주로 사용됐다. 현재는 중국 삼국시대 때 위나라 사람 유희가 쓴 '구장산술주'가 정본(定本)으로 남아있다.

피타고라스 정리

옥스퍼드대에서 연구교수를 지낸 수학자 케이트 기타가와와 컴퓨터 과학자 티머시 레벨은 신간 '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서해문집)에서 구장산술을 근거로 '피타고라스 정리' 대신 앞으로는 '구고(句股) 정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고는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을 말한다.

책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수학의 역사를 조명했다. 저자들은 그간의 수학사(史)가 서구·남성 중심의 반쪽짜리 역사였다고 지적하면서 세계 곳곳의 다양한 수학 이야기를 집대성해 담았다.

책에 따르면 2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도 1,3,5,7 처럼 1과 그 수 자신 외에는 나누어지지 않는 수인 소수(素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마야의 천문학자들은 달과 별을 관측해서 한 달이 29.5302일(오늘날 측정값:29.5306일)이라는 사실을, 1년이 365.242일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예측했다.

인도 자이나교도들은 무한의 개념을 설파했다. 19세기 독일 수학자 칸토어가 발견한 무한을 2천여년 전에 이미 개념화했다는 얘기다. 중국의 '구장산술'에는 구고 정리를 비롯해 원주율(π)에 대한 정확한 계산, 이차방정식의 활용 등 수준 높은 수학적 내용이 담겨 있다.

슈퍼문

저자들은 수학사에서 큰 영향을 미쳤으나 그간 잘 조명받지 못했던 인물들도 소개한다. 세계 최초의 여성 수학자인 반소, 고대 기하학에 혁명을 일으킨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 '대수'(algebra)와 '알고리듬' 창시자인 알 콰리즈미, 뉴턴보다 300년 전에 미적분을 개척한 인도의 천재 수학자 마다바 등 젠더, 인종, 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수학 천재들을 조명한다.

저자들은 "수학은 기본적인 진리와 차갑고 엄밀한 계산과 반박할 수 없는 증명을 다룬다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진리와 지식을 형성해온 힘 있는 인물과 조직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이 책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수학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말한다.

이충호 옮김. 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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