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로 읊은 사랑의 서사시…빈 필하모닉 내한공연

연합뉴스 2024-10-24 12:00:49

말러 '교향곡 5번'으로 첫 일정…존재감 보여준 '아다지에토'

日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와도 협연…25~26일 조성진과 공연

관객에게 인사하는 안드리스 넬손스와 빈 필하모닉 단원들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하프 선율에 맞춰 바이올린과 첼로 등 현악기들의 연주가 시작되자 공연장 여기저기서 들리던 기침 소리가 순식간에 멈췄다.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이 선사한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한국 클래식 공연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만한 무대가 됐다.

클래식 팬들이 고대하던 빈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5번' 연주회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1902년 작곡된 말러 '교향곡 5번'은 절망에서 환희로 이어지는 감정적 여정을 불굴의 인간 정신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독일 낭만주의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대규모 악기 편성과 5개 악장의 복잡한 유기성으로 교향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영화 '헤어질 결심' 삽입곡으로 잘 알려진 4악장 '아다지에토'는 사랑의 감성을 섬세하게 표현해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말러 '교향곡 5번'은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1·2악장과 활기차고 매력적인 3악장, 사랑과 환희를 표현한 4·5악장으로 구성됐다. 개성이 강한 악장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오케스트라에 수준 높은 연주 실력이 요구된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자들이 모인 빈 필하모닉에게도 말러 '교향곡 5번'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긴장한 듯 1악장의 시작 부분인 트럼펫 팡파르 서주에서 음향 조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다행히 라트비아 출신 명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의 지휘로 악단은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무난하게 끝난 1·2악장과 달리 3악장부터는 빈 필하모닉의 저력이 발휘됐다. 오스트리아 민속춤인 '랜틀러'의 가볍고 활기찬 선율에 묵직한 연주를 효과적으로 가미해 생동감 넘치는 곡을 완성했다. 15분이 넘는 긴 연주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어진 4악장 '아다지에토' 연주는 빈 필하모닉의 존재감을 여실하게 보여준 무대였다. 연주자는 물론 관객까지도 지휘자의 지시에 동화돼 직접 무대 위에서 연주에 참여한 듯한 음악적 체험을 부여했다. 포디움에 선 넬손스는 손짓과 몸짓은 물론 표정까지 음악에 완벽하게 심취한 모습이었다.

연주자들도 넬손스가 의도한 음악적 감성을 완벽하게 이해하며 섬세한 연주로 곡을 완성해냈다. 연주를 이끈 바이올린과 첼로 못지않게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준 더블베이스의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감동과 환희로 가득 찬 공연장 분위기를 5악장의 활기찬 연주로 환기하며 공연을 마친 빈 필하모닉은 10여분간 이어진 관객의 기립박수에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는 이례적인 앙코르 연주를 선보였다. 앙코르곡으론 말러 '교향곡 5번' 1악장과 유사한 트럼펫 팡파르로 시작하는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 선택됐다. 넬손스의 빈 필하모닉의 유쾌한 선곡 의도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무대였다.

관객에게 인사하는 안드리스 넬손스와 빈 필하모닉 단원들

이날 공연 1부에서는 1980년대 일본에서 '바이올린 천재 소녀'로 불렸던 미도리가 빈 필하모닉과 함께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어느덧 50대 거장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미도리의 원숙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앙코르로 선보인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은 미도리의 40년 연주 경력을 제대로 보여준 무대였다.

말러와 프로코피예프로 여장을 푼 빈 필하모닉은 하루 휴식을 취한 뒤 25일(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26일(롯데콘서트홀)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다시 무대에 오른다. 조성진과는 1부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하고, 2부에선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연주한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