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43] '인간 승리' 깜둥이 가수 박일준, 인순이, 샌디김

데일리한국 2024-10-24 09:46:32
이현(왼쪽부터), 방주연, 박일준 모습. 사진=방주연 제공 이현(왼쪽부터), 방주연, 박일준 모습. 사진=방주연 제공

박일준(본명 박양엽. 1954년생)은 한국인과 흑인의 혼혈이다. 데뷔곡은 오! 진아(1977. 레스백스터와 라이처스브라더스 Unchained Melody 번안곡)이다. 박일준의 재능(싱어송라이터 겸 영화배우)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컨셉인 오뚜기 인생을 발표하면서 영화계와 가요계를 넘나들던 김상범이다. 그때쯤(1971) 가수 현숙도 발탁했다. '정말로' '요즘 남자 요즘 여자' '타국에 계신 아빠' 등의 작곡가, 메니져 일을 했다. 

주한미군과 한국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대부분은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박일준이 아버지가 뉴저지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가수로 성장한 후였다. 미국인 삼촌이 한국을 방문 미국행을 제안했고, 난생처음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몇 명의 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혼혈이 아닌 것, 반가움에 파티를 열어주었는데 그 상황이 마냥 행복할 수가 없었다. 

지난날 혼혈아로 겪었던 일이 되살아나면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원망으로 몸서리를 쳤단다. 결국 콜택시를 불러 한국으로 돌아와 버렸단다. 어느 날 병무청 직원 세 명이 소환장을 들고 징집에 응하라며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간 곳이 경북상주(상주군 모서)였다. 모친이 재혼한 사람은 상주 사람 박모씨였다. 신체검사를 상주에서 하는데, 그런 일을 처음 겪는 동네 꼬마 아이들이 깜둥이라고 놀리며 이리저리 따라다니던 일이 떠올라 상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진해에 자대 배치가 되었지만 결국은 퇴소당했단다. 당시 한국 사회 병무 행정의 난맥상이었다. 나와 이런저런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도 강박증에 아주 괴로웠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1970년대 중반, 팝송과 한국적 솔뮤직이 적당히 배합된 노래로 큰 인기를 얻으며 혼혈 가수로 우뚝 섰다. 영화사업(1991년)에도 투자하며 영화배우를 겸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가수 방주연. 사진=방주연 제공 가수 방주연. 사진=방주연 제공

이에 따른 마음고생을 술로 달랬다. 간경화로 고생하던 중, 식도정맥 파열로 생명에 위협을 받았다. 몇 달간의 입원 끝에 천만다행 호전이 되어 건강을 되찾았다. 퇴원 3년 후(2005년 12월) 트로트 앨범 '왜! 왜! 왜!'를 발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제2집(2005년)을 냈고 '트위스트 박'(2008) '꽃바람 불면'(2011년) '놀아봅시다'(2014년) '한 박자 쉬고'(2016년) '인생은'(2022년) 등 꾸준한 앨범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다문화 가정이 많아졌고 국제결혼을 한 가정도 많아 사회적인 분위기가 달라졌다. 1970년대 박일준과 비슷한 상황의 샌디김이 있었다. 그의 노래는 오아시스레코드사(1970) 발매 컴필레이션 음반(OL748) '잃어버린 고향' '태양이 뜨거워서'(정경일) '검은 눈물' '사나이 눈물' 등을 불렀다. 

눈물조차 검은 눈물이다. 남다른 피부색으로 눈총받고 천대받은 삶이 얼마나 모진 삶이었을까? 노래조차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불렀다. 샌디김의 요즘은 특유의 강인함으로 미국에서 큰 성공을 했단다. 박일준과 동병상련의 형제애를 가지며 서로 위로하며 미국과 한국을 오간다. 박일준은 서울 동대문구 홍보대사(2013년 7월)를 하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인순이(1957년 4월 김인순) 역시 흑인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혼혈 한국인이다. 아버지는 인순이가 태어났으나 야멸차게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를 본 적도 없다고 한다. 12살 때 미국에 있는 아버지와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고 미국행을 제안받았지만 혼자 남을 어머니를 생각해서 거절했고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고 한다. 

가수 인순이. 사진=방주연 제공 가수 인순이. 사진=방주연 제공

인순이의 모친은 혼혈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평생을 친정과 절연 당한 채로 살아야 했다. 중학교를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김완선의 이모이자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팝가수 출신 한백희 페케이지쇼에서 연습생 겸, 가수, 백댄서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무명 생활이 길었다. 무교동 대형 극장식 카바레 무대에서(1978년) 수도 없이 만났던 3인조 걸그룹 희자매는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마치 라스베이거스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소월 시에 곡을 붙인 실버들이란 노래를 불렀었다. 솔로 가수(1981년)로 활동할 때는 혼혈 특유의 곱슬머리를 가리기 위해 머리에 천을 두르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밤이면 밤마다 댄스곡을 주로 부르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국민가수라는 평은 본인만의 오리지널 히트곡이 적어도 얼마든지 올라설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낸 가수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는 사회사업(해밀사립학교)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거위의 꿈, 아버지 등의 히트곡이 있다. 박일준의 배우자 임경애, 인순이의 남편 박경배는 넓은 가슴으로 흑인 혼혈아와 결혼했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들의 가족들은 남다른 사랑을 지닌 사람들이다. 윤수일(울산 태생. 1955년)은 백인 혼혈이라 사회적인 편견은 덜했다. 언더그라운드(1974년)에서 골든그레이프스의 멤버로 데뷔했다. 장충체육관(1977년)에서 열린 한국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출전, 기획사에 발탁돼 윤수일과 솜사탕으로 정규 1집, 2집 앨범(1982년)을 발매했다. 노래 '아파트'는 야구장에서 응원가와 국민 노래로 큰 인기다. '사랑만은 않겠어요'(1977) 3집 '아름다워' 22집 '터미널' 등의 히트곡이 있다. 함중아와 양키스 그룹의 함중아는 혼혈인 양 위장하며 활동했다.

◆ 방주연 주요 약력

△1970년 '슬픈연가'로 데뷔 △'당신의 마음' '자주색 가방' '기다리게 해놓고' '꽃과 나비' '정' 등 히트곡 다수 △1973년부터 4년 연속 동양방송(TBC) 7대 가수상, 최고가수상 △KBS MBC 10대 가수상 수상 △대한민국 가수 희망시대 △한국가수협회(예총1969년 설립) 여성가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