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정산 20일 내 의무화에…업계 "누굴 위해 법 바꾸나"

데일리한국 2024-10-22 17:12:51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진 지난 25일 피해자들이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 사무실에서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진 지난 25일 피해자들이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 사무실에서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김보라 기자] 정부가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 재발방지를 위해 앞으로 이커머스 사업자는 20일 이내 판매대금을 입점 사업자에게 정산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실효성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신생 기업들은 성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8일 지난 티메프 사태와 같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매출액 100억원 혹은 거래규모 1000억원 이상인 국내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은 '정산기한 최대 20일'과 '판매 대금 50% 별도 관리' 의무가 생긴다.

숙박·공연 등 소비자가 구매를 먼저 한 뒤 서비스가 나중에 공급되는 경우라면, 소비자가 실제 이용하는 날을 기준으로 10일 안에 정산해야 한다.

더불어 금융기관에 별도 예치, 또는 지급보증보험 가입 형태로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판매대금 비율은 50%로 정해졌다. 예치된 판매대금은 압류할 수 없고, 플랫폼이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하는 행위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커머스 업계는 정부의 이같은 대책이 실효성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부분의 업체의 정산주기는 정부의 방안(20일)보다 짧고, 결제대금 보호서비스인 ‘에스크로’를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네이버쇼핑, 11번가, G마켓의 경우 이미 구매 확정일 기준 1~3 영업일 안에 입점 업체에게 정산해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쿠팡 봐주기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쿠팡의 경우 판매자가 주정산과 월정산 중 선택할 수 있다. 주정산은 매주 마지막날부터 15일 영업일안에 70%를 지급한다. 나머지는 월단위로 합산해 익익월 1일에 정산한다. 현행 직매입일 경우 60일까지 가능하지만, 70%를 15일 이내에 지급한다. 

지난 21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위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이번 조치를 통해 혜택을 보는 기업이 쿠팡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업체 29곳 중에서 19곳이 이미 10일 이내 정산주기를 사용하는 곳"이라며 “쿠팡을 제외한 대부분 플랫폼이 정산 주기를 1~3일로 하고 있는 만큼 법정 정산 주기를 '20일 내'보다 더 짧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금 유동성이 원활하지 않은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과 성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벤처기업협회는 성명을 통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도입은 기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은 물론이고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로 이커머스 산업에 진입하려는 벤처·스타트업의 혁신 의지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실태조사 등 업계 현황을 고려하지 않은 10일∼20일 이내의 정산 주기가 도입되면 이커머스 플랫폼은 정상적인 사업 확장과 혁신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며 "결국 관련 산업 전체의 줄폐업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내다봤다.

공정위도 이같은 지적을 의식해 적용 유예기간을 1년으로 설정해 업체가 적응할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 이커머스 기업의 경우 이미 정산 주기가 짧아 정부 개정방안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한 기업의 방만한 운영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정산일을 바꾼다고 이런일이 안일어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산지연 사태 이후,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뤄진 조치라는 점에서 그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규제를 통해 자금유동성이 경직되면 이커머스 시장이 성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규제 범위와 대상을 기업 규모 별로 나눠서 적용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