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개신교 150년 발자취 한눈에…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출간

연합뉴스 2024-10-22 16:00:20

NCCK,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100년사 출간

3·1 운동 주도했으나 일제에 동조하기도…유신에 저항·통일운동 전개

책 표지 이미지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콜레라는 귀신에 의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병은 세균이라 부르는 아주 작은 생명체에 의해 일어납니다. (중략)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음식물을 완전히 익히고, 다시 오염되기 전에 먹음으로써 세균을 죽이는 것뿐입니다."

구한말 한국에 통합의료기관을 세우도록 서구 선교사들과 교회를 설득하고 세브란스 병원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미국 북 장로회 소속 의료 선교사 올리버 에이비슨(1860∼1956)이 1895년 한반도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이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만든 포스터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올리버 에이비슨

당시 의료 선교사들이 여러 전염병의 도전에 직면해 현대 의학의 상식을 보급하기 위해 애썼음을 포스터에서 엿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운동의 흐름을 알기 쉽게 정리한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1∼3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22일 출간됐다.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 조약과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한 1876년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민주화 시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사회운동 역사를 총괄해 소개한다.

서양 의사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한국의 의료 수준 향상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한국인을 상대로 한 의학 교육에 헌신한 에이비슨 선교사를 비롯해 의료, 교육, 기술 등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며 사회 변화를 촉발한 초기 선교사들의 활동이 생생하게 담겼다.

일제 강점기에 관해서는 기독교의 저항과 변절을 함께 다룬다.

3·1 운동 때 지역교회 목사나 평신도를 중심으로 장로교인 7명, 감리교인 9명이 민족대표로 참여했고 "기독교가 주도적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했으며 이후 여러 명이 고문을 당하거나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소개한다.

기미독립선언서

하지만 1930년대 이후 신사 참배 강요 등 신앙을 위협하는 일제의 통치가 전개되는 가운데 일부 지도자들이 일제에 동조해 변절·훼절했으며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교회의 재산과 기물을 자발적으로 전쟁 물자로 공출하거나 징집·징병에 적극 참여하는 교단도 있었다며 한국 기독교가 "역사적 과오에 대한 공동책임자"라고 지적한다.

책은 현대사 "이승만 정권기에 보였던 정치권력과의 유착으로 4월 혁명 이후 기독교는 사회적 불신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새로운 정교관계를 확립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었다"며 현대사 시기에 관해서 반성적 시각을 유지한다.

하지만 유신체제 성립 이후에는 전국 각지의 기독교단체가 구국기도회를 열어 자유민주 질서 확립을 요구하고 구속자 석방 운동을 전개하는 등 시민들과 함께 저항했고 에큐매니컬 계열의 사회 운동이 "민주화·인권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구속된 성직자와 근로자를 위한 기도회(1978년)

아울러 1988년 2월 29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개최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제37회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을 채택하는 등 기독교계가 1980년대 후반 이후 공개적인 남북 평화 담론을 도출하고 통일운동을 대중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김학중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발행사에서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가 "개항기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한국기독교 사회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첫 통사"라며 "이 책을 통해 한국기독교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와 항상 동행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NCCK는 1924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로 출범해 1931년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로 이름을 바꿨다가, 1946년 한국기독교연합회로 재건한 뒤 197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 개편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00년의 발자취를 소개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100년사'도 이날 출간했다.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