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료들과 '샤잠' 내한공연…드쿠플레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

연합뉴스 2024-10-22 16:00:20

"52세 무용수 춤에서 시간의 흔적 발견하길"…초연 출연자들과 26년 동행

"존재감·충만함으로 부족한 5% 채워"…25∼27일 LG아트센터서 공연

필립 드쿠플레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아름다운 존재감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복합 예술 공연의 거장 필립 드쿠플레의 대표작 '샤잠!'이 1999년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 이후 25년 만에 한국에서 재공연된다. 오는 25∼27일 서울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에서 한국 관객을 만난다.

1998년 칸국제영화제 50주년을 기념해 창작된 '샤잠!'은 프랑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극장에서 200여차례 공연된 작품이다. 실재와 구분할 수 없는 가상의 이미지와 아날로그 영화 촬영 기법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2021년 한 차례 재구성된 바 있지만, 초연 당시의 무용수들과 연주자들이 여전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공연을 사흘 앞둔 22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을 만난 드쿠플레는 이번 공연에서 무용수들의 신체에 남은 아름다운 '시간의 흔적'을 찾아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는 1998년 초연에 참여했던 무용수들이 대부분 참여한다"면서 "25살의 무용수가 어느덧 52세가 돼 여전히 아름다운 솔로 춤을 추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샤잠!' 공연 장면

나이 든 무용수들이 공연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무용수들이 다리를 들어 올리는 각도가 이전에 비해 낮을 수는 있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예전 기량의 95%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면서 "부족한 5%는 무용수들이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갖게 된 존재감과 충만함으로 채워진다"고 강조했다.

드쿠플레가 26년 동안 같은 무용수들과 공연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존중'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드쿠플레는 "무용수들은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각자의 역할과 재능은 다른 누군가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십편의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드쿠플레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무대 공연과 접목하는 시도를 자주 한다. '샤잠!'에서도 무대 위 무용수와 영상 속 무용수를 중첩해 실재와 가상을 분간할 수 없도록 연출한다. 드쿠플레는 "'샤잠!'은 영화와 무용이 조화롭게 향연을 펼치는 공연"이라며 "화면 속 무용수와 실재 무대 위에서 춤추는 무용수의 중첩을 통해 시간의 흔적을 직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립 드쿠플레

여러 장르가 혼합된 복합 예술을 추구하지만, 드쿠플레도 '샤잠!'의 본질이 무용이라는 점에 대해선 동의를 표했다. 특히 자신이 구현하려는 예술의 근본적인 형태가 무용 안에 존재한다고도 인정했다. 드쿠플레는 "무용은 제가 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예술의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장르"라면서 "물론 심리상담을 해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그런 점들이 제가 결국 다양한 장르 중에서 무용에 안착한 이유"라고 말했다.

화면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무용만의 생생한 예술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드쿠플레는 "관객이 무용수와 같은 공간에서 춤을 바라보는 감동은 화면이 주는 감동과 아주 다르다"면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지닌 무용은 완벽한 상황에서 촬영된 영상은 물론 그 어떤 장르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안무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드쿠플레는 스스로를 특정 장르에만 한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안무가는 물론 영화감독과 광고 제작자, 뮤직비디오 감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유도 자신을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샤잠!' 공연 장면

드쿠플레는 "저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지만, 적어도 하나의 이야기만을 하는 이야기꾼은 아니다"라면서 "매번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고,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한 창작 욕구로 새로운 예술 장르 구현을 추구하는 드쿠플레에게도 K팝은 넘기 힘든 장벽이라고 한다. 그는 "지인의 딸이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는데 그들이 추구하는 시각적 이미지와 춤 등에는 매우 감탄했다"면서도 "다만 음악 자체에 대해선 제 취향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K팝이 갖춘 복합 예술로서의 창의성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드쿠플레는 "K팝 스타들의 놀라운 무대 의상과 연출, 또 그런 장면을 잘 촬영해서 편집해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창의력을 감지했다"고 칭찬했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