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상상력으로 현실과 허구 넘나드는 작가 미카 로텐버그

연합뉴스 2024-10-22 00:00:52

현대카드 스토리지 국내 첫 개인전…생산·노동 등 주제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영상 '재채기'(Sneeze) 속 코가 유독 큰 남성이 계속해서 재채기한다. 그가 재채기할 때마다 마치 입에서 튀어나오듯이 토끼, 날고기, 전구 등이 생성된다. 또 다른 영상 '메리의 체리'(Mary's Cherreis) 속 인물은 손톱을 기르고 수확한 뒤 이를 으깨 체리를 만든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는 작가 미카 로텐버그의 국내 첫 개인전 '노노즈노즈'(NoNoseKnows)가 23일부터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린다.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석사 졸업작품인 2004년작 영상 '메리의 체리'부터 최근작인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버섯 모양의 조명 작업 '램프셰어'(Lampshare)에 이르기까지 20년간 작업한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와 영상 등 15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로텐버그는 21일 이들 작품에 대해 "시간상으로는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모두 연결고리가 있다"면서 "생산과 노동, 그리고 무엇이 인공이고 자연인가 등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설명했다.

영상 '재채기'에서는 재채기라는 행위가 노동이 되고 '메리의 체리'에서는 거대한 신체를 가진 여성이 붉은색 손톱으로 체리의 한 품종인 마라스키노 체리를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 신체의 대상화, 노동의 과정, 노동하는 신체 자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201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출품작인 '노노즈노즈'는 양식 진주를 채취하는 중국의 한 공장과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무직 직원이 등장하는 미국 뉴욕의 세트장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지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연관성도 불분명한 두 곳의 모습이 교차되는 영상은 불합리한 노동 구조 등 부조리한 현실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한다.

전시장 벽 곳곳에는 실제 신체 크기와 유사한 크기의 키네틱 조각들이 걸렸다. 벽에서 튀어나온 손가락('Finger')은 한자리에서 의미 없이 회전하고 말총 모양으로 묶은 머리('Ponytail')는 채찍질하듯이 움직인다. 벽에 부착된 입술('Lips(Study #3)') 속에서는 기묘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최근작인 '램프셰어'는 환경 문제에 실천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반영된 작품이다. 스튜디오 주변에서 발견한 침습 덩굴과 노박덩굴, 뉴욕에서 수집한 폐플라스틱 등을 이용해 버섯 모양의 조명으로 만들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시각적인 시'(Visual Poem)로 표현했다. 그는 "이런 방식이 가장 나를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면서 "각 작품에 대해 머릿속에 정해 놓은 고정된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니 자유롭게 경험해달라"고 당부했다.

전시는 내년 3월2일까지. 유료 관람.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