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 지리산 자락서 '유기농 바나나' 재배 40세 대표

연합뉴스 2024-10-21 00:00:52

'올바나나' 강승훈 대표, 사직 후 귀농

수입 바나나 틈새시장 창출…1년 140t 수확, 전량 판매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바나나가 주렁주렁

(산청=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바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수입 과일이다.

국내 바나나 시장은 사과, 포도 등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과일만큼 그 규모가 크다.

그러나 선박에 실어 긴 운송 과정을 거쳐 수입되는 탓에, 바나나를 좋아하면서도 선뜻 사 먹기를 꺼리는 소비자도 있다.

이에 청년 농업인 강승훈(40) '올바나나'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유기농 바나나로 '친환경 바나나 틈새시장' 창출에 도전했다.

그는 서른을 앞둔 2013년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부모님 시설하우스 농사를 돕다 2017년부터 바나나 농사를 시작했다.

강 대표는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군에서 바나나를 키운다.

산청군 생비량면 도전리에 있는 바나나 온실 규모는 7천평이나 된다.

보통 시설하우스보다 천장이 높은 온실에 사람 키보다 훨씬 크면서 녹색 바나나가 주렁주렁 달린 바나나 나무가 빼곡하다.

지리산 자락에서 바나나 재배

"대학 졸업 후 베트남에 진출해 휴대전화 충전기를 만드는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에 입사했어요. 베트남 주재원으로 일하며 자재 구매, 수출입 통관 등을 맡았습니다."

그러다 그는 진주시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하는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서 농사일을 힘들어하자, 어렵사리 귀농을 결정했다.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봐 왔지만, 전문적인 농업 지식은 없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 농사를 돕는다고 하니 '벌이도 괜찮고, 회사 지원도 많은데 왜 그만두느냐'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도 '사회생활 더 하다 오라'고 하셨고요."

강 대표는 처음에 부모님 파프리카 농사를 도왔다.

그가 보기에 주로 일본에 수출하는 파프리카 농사는 환율 영향을 많이 받고 재배농도 많아져 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해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다.

그때 대체 작물로 눈여겨본 것이 바나나였다.

그는 "국내 과일 시장에서 바나나는 규모 1∼2위를 다툴 정도로 시장 자체가 큽니다. 여기다 가격이 비싸도,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수입 바나나는 긴 운송 과정 때문에 보존 처리가 필요한데,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바나나를 국내에서 재배하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습니다"며 바나나 재배에 도전한 배경을 설명했다.

강 대표는 회사 다니며 모은 돈과 영농후계자 대출, 여동생 등 가족에게 빌린 돈으로 부모님이 사는 진주시와 가까운 산청군 생비량면 도전리에 땅을 구해 온실을 지었다.

제주도에서 바나나 묘목을 가져와 온실에 심었다.

우리나라입니다

그러나 바나나 재배에 도움 되는 정보를 얻을 길이 막막했다.

"바나나가 국내 재배작물로 등록이 안 된 상태였어요. 그러다 보니 작물 재해보험 가입도 안 되고, 재배 매뉴얼도 없고, 보조금 사업 대상에서도 바나나는 아예 빠져 있고…. 모종을 사 온 제주도 농가에 알음알음 묻고, 구글 검색, 외국 자료를 번역해가며 공부했습니다."

바나나를 수확하려면 1년 정도 걸린다.

묘목을 심고 6∼7개월쯤 지나면 바나나가 열리기 시작하고, 4∼5개월 다시 지나면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바나나가 자란다.

수확이 끝난 바나나 나무는 베어낸 후 삭혀 거름으로 쓴다.

어렵사리 2018년에 바나나 수확에 성공했다.

현재 강 대표가 직원 4명과 함께 1년에 출하하는 바나나 양은 140t 정도다.

70% 정도는 농협 하나로마트, 생활협동조합(생협), 친환경 마트, 대형마트 등을 통해 팔리고, 30%는 온라인으로 유통된다.

그는 "연간 30만∼40만t에 이르는 우리나라 바나나 수입량과 비교하면 우리 생산량은 아주 작은 '티끌' 정도다"고 전했다.

하지만 수입 바나나보다 맛과 품질이 낫다고 자신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친환경 자재·약재를 사용해 강 대표가 재배한 바나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유기농을 의미하는 'organic', '최고'를 의미하는 'all'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아 브랜드명을 '올바나나'로 지었다.

서류 작업 중인 강승훈 대표

그는 "재배·유통까지 100% 친환경 바나나는 국내에서 키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며 "수확해 보존 처리를 거쳐 한 달 넘게 걸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수입 바나나와는 신선도가 달라 맛 차이가 대번에 난다"고 강조했다.

그가 재배한 바나나는 수입 바나나보다 2∼3배 비싸다.

강 대표는 "수입 바나나와 시장 자체가 다르다"며 "재구매하는 사람이 많고, 생산량 전부가 팔린다"고 전했다.

그는 "30대 초반이라 의욕이 넘쳤고 체력이 뒷받침되니,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며 생소한 바나나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젊음을 꼽았다.

그러면서 "2018년 첫 수확 때는 팔 데가 없어 바나나가 익어가는데도 그냥 매달아 놔야 했다"며 "제주도 외에 바나나 재배가 흔치 않던 시점에 지리산 내륙 청정지역에서 젊은이가 친환경으로 바나나를 재배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차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농사나 짓겠다'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과연 농사를 지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자문하면서 준비기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농업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조언했다.

sea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