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가처분 공방 이르면 내일 결과…"회사 지키기냐, 경영진 지키기냐"

연합뉴스 2024-10-20 07:00:27

영풍·MBK "대주주 간 분쟁" vs 최윤범 회장측 "약탈적 M&A"…심문기일 공방 치열

"美 '유노칼 사건'과 유사…한국 자본시장 큰 영향 미치는 선례 될 것"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고려아연[010130]의 자기주식 공개매수는 회사 전체를 위한 것인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현 경영진을 위한 것인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가처분 사건 심문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위 쟁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의 적법성을 가늠한다는 점에서 자본시장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풍[000670]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기일에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영풍과 최 회장 측은 구체적으로 ▲ 주당 89만원에 진행되는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가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지 ▲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사들은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했는지 ▲ 임의적립금을 이사회 결의만으로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로 포함시켜 자사주 취득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 1대주주 영풍이 참여할 수 없는 자사주 공개매수가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되는지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큰 틀에서 보면 이 같은 쟁점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최 회장 개인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인지라는 논점으로 귀결됐다.

어떤 방향으로 자사주 공개매수를 규정하느냐에 따라 이번 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판이하게 갈렸다.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이번 사건은 1대주주 영풍과 2대주주 최씨 일가 간 경영권 분쟁이며, 자사주 공개매수는 최 회장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권자인 영풍 측 대리인은 법정에서 "원래 고려아연은 장씨 측 지분이 최씨 측보다 2배 이상 많았지만 최씨 일가에 경영권을 위임했고 최윤범 대표는 취임 이후 제3자배정 신주발행으로 우호지분을 늘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의 정관 변경 시도, 서린상사 경영권 박탈, 황산취급계약 종료 등의 사건을 열거한 뒤 "이에 채권자는 1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회수해 정상화하기로 하고 MBK파트너스를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하고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 이 사건 분쟁은 대주주 간 분쟁이고 발단은 채무자(최 회장)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사주 공개매수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최윤범 개인을 위한 것"이라며 "1대주주와 2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에 회사 자금을 쓰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 회장 측은 이 사건은 현 경영진의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약탈적 M&A'이며, 자사주 공개매수는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최 회장 측 대리인은 "최대주주 영풍은 들러리고 MBK파트너스가 당사자이며 상대방은 고려아연 회사와 전체 주주"라며 "채권자의 공개매수는 약탈적 M&A에 해당하고 전체 주주 이익에 해가 된다. 최윤범 회장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게 아니고 우리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은 사외이사, 협력업체, 종업원, 지역사회, 더 나아가 여야 정치인들까지도 동조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최대주주이면서 다른 일반주주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해 경영권 확보에 실패한 채권자가 사모펀드를 등에 업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 경영진을 몰아내고 경영권 확보를 시도하면서 그 전략적 수단으로서 유지청구권을 활용하려는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채무자 측 사외이사 포함 절대다수의 이사, 임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재판부께서 혜안으로,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실적으로 보여준, 검증된 경영자가 누군지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영권 확보를 노린 공개매수에 대응하는 방어 수단으로서 대규모 자사주 취득은 한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다.

미국에서는 1985년 유노칼(Unocal)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기업 방어수단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메사 페트로리움이 미국의 석유기업 유노칼 주식에 대해 공개매수를 선언하자 유노칼 이사회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메사 페트로리움을 제외한 전 주주를 상대로 자기공개매수를 결정했다. 이에 메사 페트로리움은 유노칼의 공개매수에 자신들이 제외된 것은 부당하다며 이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심리한 델라웨어주 법원은 ▲ 공개매수로 회사가 위협당한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행위의 정도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합리성·비례성 기준을 제시했다.

천준범 변호사(와이즈포레스트 대표)는 "공개매수를 방어하려는 회사의 경영진과 이사회가 '자신의 유임을 위해' 공개매수 방어수단을 결의하는 경우는 없다. 모두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한 명분을 내세운다"며 "따라서 법적으로 중요한 쟁점은 그것이 '팩트'이며 '합리적'이냐는 것"이라고 짚었다.

천 변호사는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에 대한 회사의 대규모 자사주 취득은 한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대규모 공개매수에 대한 회사 경영진과 이사회의 방어수단 활용이라는 점에서 유노칼 사건과 상당히 유사하고 앞으로 우리나라 자본시장 실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풍이 제기한 2차 가처분에 대한 법원 결정은 이르면 오는 21일에 나올 예정이다.

nor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