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원정·김지향 "독일 현대음악에 한국 정체성 담았죠"

연합뉴스 2024-10-18 11:01:07

서울국제음악제 '서울의 정경'…'귀천'·'테네브래' 초연

"누가 들어도 난해하지 않은 음악…감동 주는 공연 될 것"

서울국제음악제 '서울의 정경' 리허설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독일의 현대 음악을 모방한다기보다, 저희가 독일에서 공부한 것을 토대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은 음악을 들려드리려고 해요.

제16회 서울국제음악제(SIMF)에 참가하는 작곡가 이원정과 김지향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음악의 방향성을 묻는 말에 입을 모아 이같이 말했다.

18일 개막하는 올해 서울국제음악제의 콘셉트는 '중부유럽 여행'이다. 그러나 두 작곡가의 음악이 무대에 오르는 21일 공연의 주제는 '서울의 정경'. 한국에 현대음악을 뿌리내린 선구자 강석희(1934∼2020)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그 후계자들의 음악을 조명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이원정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가사로 삼아 '여창가곡과 현악앙상블을 위한 귀천'을 선보인다. 현악 앙상블의 음향과 우리 전통 가곡의 특성이 어우러진 곡이다.

그는 "우리 민족, 한국 사람만이 가지는 어떤 정서를 담아내려 했다"며 "소프라노가 아닌 여창 가객이 음악을 끌어나간다는 게 서양 현대음악과의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곡은 이원정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진혼 연작' 작품을 쓰던 차에 만들어졌다.

"'귀천'이라는 시는 아버지가 투병 생활을 하시던 10년 동안 제가 묵혀온 감정과 잘 맞아떨어졌어요. 그땐 항상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지냈거든요. 어떻게 보면 이 곡은 10년간 제가 묵히고 또 묵혔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 이원정(왼쪽)과 김지향

김지향은 가톨릭 색채가 강한 '테네브래'를 초연한다. 라틴어로 '어둠'을 뜻하는 '테네브래'는 성 고난 주간의 기도다.

곡의 제목처럼 무대에서 기악 연주자들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보면대 등만 켠 채 연주를 시작한다.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보면대 등이 하나씩 꺼진 뒤 연주자들은 한명씩 차례로 퇴장한다. 마지막 악장에서 소프라노 앞 조명 하나만 남아 무대를 밝히며 음악은 마무리된다.

김지향은 "2020년 전 인류가 코로나19로 고통받던 때 만든 곡"이라며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는 불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4년에는 잘 안 어울리는 곡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많은 죽음이 발생하고 있고 희망이 필요한 사람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저희 곡은 공통으로 숭고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제 곡은 연주가 끝나고 나면 관객이 무언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을 듯합니다. '귀천'의 경우 가사가 주는 힘이 있을 거고요."

이원정은 "현대음악이 20세기를 거쳐오면서 너무 어두운 면만을 표현한 것 같다"며 "저는 휴머니티가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류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해오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서울국제음악제 '서울의 정경' 리허설

이번 공연에선 강석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부루'도 들을 수 있다. 이 곡은 고대 신라시대의 무속적 세계를 다룬 이 곡 역시 신성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허밍과 '우아' 같은 구음으로만 진행되다가 유일한 가사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뜻의 불교 용어)이 나온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언뜻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 작곡가는 "굉장히 대중 친화적이고 누가 들어도 난해하지 않은 공연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관객들은 음악을 들었을 때 감동을 얻기를 원하잖아요. 이번 공연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공감입니다. 관객이 감동할 수 있는 공연일 거예요."(이원정)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