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낙동강 옆 불법 건축 강아지 번식장에 갇힌 눈먼 강아지

연합뉴스 2024-10-18 00:00:57

15개 동물단체, 심한 악취 속 철창에 갇힌 450여 마리 구조

국가 부지에 무허가 건물…"지자체 이행강제금만 부과 수수방관"

실명된 강아지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17일 오전 9시 국가하천인 서낙동강과 평강천이 만나는 지점.

시원한 낙동강 바람이 불 때마다 코끝에 심한 악취가 풍겨왔다.

국내 15개 동물단체가 소속된 '루시의 친구들'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 외국 동물구조단체가 악취가 풍겨 나오는 부산 강서구 대저동 불법 번식장을 찾아 강아지를 구조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강변에서 좁은 길을 따라 수백m만 이동하면 국가 소유의 부지에 지어진 무너져가는 무허가 건축물 밖으로 심한 악취와 함께 개의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붕에는 강아지 2마리가 낯선 외부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건물 안에 갇힌 수백마리의 친구들을 구조해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이따금 건물의 작은 구멍 사이로 배설물을 뒤집어쓴 듯한 강아지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밖이 궁금해

작은 틈 사이로 보이는 건물 내부는 '생지옥'이었다.

4단으로 적재된 철장 케이지 안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개가 배설물을 밟고 서로의 몸을 부대끼고 있었다.

푸들, 몰티즈, 웰시코기, 포메라니안 등 주로 반려동물가게(펫숍)에서 인기가 많은 견종이었다.

오전 10시 소식을 듣고 번식장 소유주가 나타났다.

이 소유주는 "어렵게 사는 사람한테 왜 그러냐"며 "강아지를 판매하려고 키우는 게 아니고 사랑해서 키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곳은 불법 강아지 번식장이었다.

불법 강아지 번식장 외부 모습

이 소유주가 최근까지 강아지들을 경매장에 넘겼던 거래 전표도 발견됐다.

현행법상 허가 받지 않는 강아지 번식장은 경매장에서 거래할 수 없다.

동물단체는 소유주가 경남 김해에 소규모 강아지 번식장을 허가받은 뒤 불법 번식장에서 키운 강아지를 합법 번식장에서 키운 것으로 둔갑해 판매한 것으로 추정했다.

배설물 가득한 철창에 갇힌 강아지

부산시, 강서구, 동물단체 관계자들은 불법 거래 정황을 근거로 설득에 나섰고 결국 소유주가 소유권 포기 각서를 썼다.

오전 11시 30분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펼쳐졌다.

우선 수의사가 긴급히 치료가 필요한 강아지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구조되는 강아지가 수의사 치료를 받고 있다

한 푸들은 출산이 힘든 많은 나이에도 최근까지 출산을 해 건강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한 상태였다.

한 믹스견은 수의사 확인 결과 두 눈 모두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다리를 심하게 저는 강아지, 영양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심한 저체중을 보인 개들도 있었다.

한 동물단체 관계자는 "많은 강아지 구조 현장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개들이 방치된 경우는 드물었다"고 말했다.

건강이 악화한 상태로 발견된 강아지

당초 180~250여마리의 개들이 이곳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됐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450여 마리가 철장 안에 있었다.

구조작업에만 이틀 이상 걸릴 예정이다.

동물단체는 반려동물 생산업은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경됐지만, 여전히 지자체들의 방관 속에 무허가 불법 강아지 번식장이 곳곳에 있고 합법적인 번식장조차 온갖 불법이 만연한다고 지적했다.

부산 강서구는 해당 번식장을 사실상 인지한 것으로 보이지만, 2020년부터 무허가 건축물에 대한 이행강제금만 부과하고 있었다.

이날 구조작업이 펼쳐진 인근에는 개 도살장, 불법 개 농장 등 불법 시설물이 여러 곳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물보호단체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국가나 지자체가 생산업자, 경매장, 펫숍을 거쳐 유통되는 강아지 거래 구조를 철저하게 감시하지 않으면 이곳과 같은 불법 강아지 번식장은 뿌리 뽑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눈물 흘리는 동물단체 회원들

handbroth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