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42] 양반고을 딴따라, 찰스다윈 딴따라, 장마당 딴따라

데일리한국 2024-10-17 22:29:53
왼쪽부터 백인엽 장군, 백선엽 장군, 방효열여사, 프란체스카 여사, 이승만 대통령, 변영태 국무총리, 이호 국방부 차관 모습. 이승만 대통령이 백선엽 장군의 모친 방효열 여사 회갑을 맞아 금시계를 선물했다. 사진=방주연 제공 왼쪽부터 백인엽 장군, 백선엽 장군, 방효열여사, 프란체스카 여사, 이승만 대통령, 변영태 국무총리, 이호 국방부 차관 모습. 이승만 대통령이 백선엽 장군의 모친 방효열 여사 회갑을 맞아 금시계를 선물했다. 사진=방주연 제공

예전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부류를 예술인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하대하는 뜻의 광대 또는 '딴따라'라고 불렀다. 1970년대 중반, 나의 전성기때다. 정부 주도로 대마초 연예인들의 숙청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다. 포승줄에 묶여 감옥으로 가는 인기 연예인들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모든 국민의 경각심을 촉구하는 시대적 혁명작업이었다. 건국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런 와중에 남아있는 몇 명의 가수들은 그들이 해야 할 공연, 방송을 대신 출연하느라고 혹사를 당했다. 내 노래 '당신의 마음' '기다리게해놓고' '자주색 가방' '정' '말해주겠니' '연화' '꽃과 나비' '그대변치않는다면'을 매일 반복해 부르면서 뻥 뚫린 가요계를 감당하느라고 실신,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이때 결혼 적령기를 넘어가던 시기여서 하늘이 내게 내린 명령인가? 나는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친구의 소개로 2년여 교제 기간을 가졌는데, 사실상 시댁은 결혼을 반대했다. '딴따라'라는 것이었다. 시댁은 조선시대 왕의 건강을 책임지던 시의(侍醫) 집안에 병원 재벌이었다. 조선시대 고위직이었던 관계로 원적지는 한성부 낙원동 1번지, 그야말로 양반가다. 조부, 친부 형제 모두 의사들이다.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받아들였다.

시아버지는 그 시대에 120개국 세계 일주를 했다. 학교와 문화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고 국회의원도 키워냈다. 허락 이유는 그나마 '양반 딴따라'라는 것이다. 내 뒷조사를 해보니 '상주(尙州) 방' 씨에 양반고을 출신이라는것, 方씨 시조 월봉 방지(方智)선생은 신라 궁에서 초청한 당의 한림학사(翰林學士)다. '홍유후 설총'의 스승으로 신라에 국학을 세운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위문공연 모습. 1950년 가을, 전쟁 속에서도 군인들의 사기를 위해 다양한 공연들이 있었다. 국군 위문공연을 즐기는 군인들 속에 우리 아버지도 계신다. 1950년 조선뉴스 프레스 군사전문서 사진 발췌. 사진=방주연 제공 위문공연 모습. 1950년 가을, 전쟁 속에서도 군인들의 사기를 위해 다양한 공연들이 있었다. 국군 위문공연을 즐기는 군인들 속에 우리 아버지도 계신다. 1950년 조선뉴스 프레스 군사전문서 사진 발췌. 사진=방주연 제공

문경과 괴산, 상주로 이어진 청화산이 상주 方씨의 발원지다. 나는 외가인 만산동 태생이다. 이순신 장군의 장인 방진(方震) 보성군수는 사위 이순신에게 무예 전수 및 경제적 지원으로 무과에 급제시켰다. 현충사 내 이순신 고택은 장인 방진(方震)의 집이다. '방진'은 보성군수 이전에 유일 천거로 대정현감(제주서귀포)을 지냈다.

우리 아버지는 6,25때 군사 정보 전문가로 수많은 간첩 색출로 국가유공자가 되셨다. 우리 집안 방동업 아재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 장군의 통역관을 하면서 미군 관용차를 운전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방동오 아재 역시 미국통으로 미군 전용 호텔에 근무했다.

김옥길(전 이화여대 총장) 김동길 교수의 모친도 방씨다.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출신(1946년 6월 월남)으로 방송에 출연해서 사회 비평 중에 특유의 이북 말투로 '이게 뭡네까?'라는 코멘트를 날렸다. 코메디언 최병서가 코믹하게 풍자하면서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백인엽 장군, 백선엽 장군, 모친은 방효열 여사님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백장군 형제의 모친 회갑을 맞아 가족을 경무대로 초대, 금장 시계를 선물한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사업가 방인규는 부모님, 고조, 증조, 조부모의 묘소를 집 뒷산에 모시고 수시로 제례를 올린다. 매일 조상님의 영정에 절한 뒤에 출근한다. 악기도 수준급으로 다루고 자식도 성공시켰다. 남자농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며 현재는 방씨 종친회 회장인 방열 감독, 불우한 집안을 잘 챙기는 방금석, 성격 좋은 방경환은 몽골 '아르항가'에 1억평의 한인 목장 사업을 추진하는 '뱅크몽'을 운영 중이다. 모두들 효심에 하늘이 감동해 사업이 잘된다.

방씨 역사를 보여주는 교지와 상주시 홍보대사 위촉장 받는 모습. 사진=방주연 제공 방씨 역사를 보여주는 교지와 상주시 홍보대사 위촉장 받는 모습. 사진=방주연 제공

상주에는 방씨네 집성촌이 있다. 나와는 자주 못보지만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살고있다. 그렇다면 '장마당 딴따라'는 어떤 사람들일까? 학교 교육은 뒷전이고 어린 나이에 돈 벌러 장마당(TV예능)에 나온 그들이 아닐까? 베이비(아역) 출신들은 위계질서를 잘 모른다. 인성교육이 부족해 사회성도 없다. "네가 최고야 우리 공주님 왕자님" 가족들이 부추긴다.

전설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사망(2009년) 후, 유산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추악한 분쟁을 일으켰다. 잭슨 모친의 실종 소동과 형제자매들끼리 흉기 사용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잭슨은 부친과 결별을 선언했다. 참 부모, 형제라는 인간미보다 자신을 돈 버는 기계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본질(本質生命)을 다루는 자연 치유학에서 음악 치유요법이 있다. 식물에게 바흐의 음악을 들려줬더니 훨씬 더 잘 자라더라는 것이다. 1800년대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이 음악에 식물이 반응하는 실험을 했다. 잎을 건드리면 오무라드는 '미모사'에 딴따라...나팔을 불면서 실험했다. 이때부터 '딴따라'라는 말이 생겼을까? 

식물들은 나지막하고 평온한 음악을 좋아한다. 농사지을 때 부르는 노동요는 음조가 단순하고 낮게 깔리는 특성이 있다. 가요도 차분한 클래식칼한 노래가 많다. 내 마음의 치유음악 초등학교 교실의 풍금 소리에 맞춰 부르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 골' 나는 조상님 덕을 만산(萬山)처럼 입은 상주시(홍보대사) 양반고을 딴따라다.

◆ 방주연 주요 약력

△1970년 '슬픈연가'로 데뷔 △'당신의 마음' '자주색 가방' '기다리게 해놓고' '꽃과 나비' '정' 등 히트곡 다수 △1973년부터 4년 연속 동양방송(TBC) 7대 가수상, 최고가수상 △KBS MBC 10대 가수상 수상 △대한민국 가수 희망시대 △한국가수협회(예총1969년 설립) 여성가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