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4색 문화 에세이-16] 이명진 수필가 '치장 좋아했던 성읍리 관청할망당'

데일리한국 2024-10-16 21:14:05
관성 할망당 내부 모습. 사진=작가 제공 관성 할망당 내부 모습. 사진=작가 제공

깍깍. 까마귀가 머리 위에서 회전을 한다. 배가 고파 먹이를 탐하려는 걸까. 아니면 지켜줄 누군가가 있어서일까. 가을바람이 스쳐지나가는 정의현에 까마귀 떼가 떠날 줄 모르고 배회한다. 축축 늘어진 600년 된 팽나무 그늘에서 쉬어가면 좋으련만 제멋대로 모양을 만들고 있는 흰 구름까지 합세해 관청할망당(堂)을 지켜 주려 하는지 분주하다. 조심조심 찾아와 목례를 하는 낯선 이에게 틈을 내 주지 않으려는 듯, 검은 새 떼가 한참 동안 요란스레 울어댄다.

성읍리에 자리하고 있는 관청할망당은 안할망으로 불리는 신을 모신 본향당이다. 예전에는 일관헌(日觀軒) 옆 오래된 팽나무 밑둥을 의지해 신목으로 삼았다. 그곳에 돌을 쌓아 재단을 만들고 주위에 돌담을 에둘렀다. 1971년 일관헌을 증축함에 따라 서쪽 돌담 너머로 2평 가량의 슬레이트집을 지어 옮겼다. 하지만, 1991년에 기와집으로 개축해 지금 모습을 갖추고 있다. 

당집 안에는 제단이 반듯하게 마련되어 있다. 중앙에 나무로 만든 신단(神壇)도 있어 엄숙함이 느껴진다. 좌우에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있고, 기와 속에는 쌀을 부어 놓았다. 신단을 열면 왼쪽에는 구슬 목걸이가 걸려 있고 위패 밑에는 붉은 방석 위에 비녀가 한 개 놓여 있다. 관청할망은 성읍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신수를 관장하고 풍요를 안겨 주는 신이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현해수호신지위(懸海守護神之位)'라고 쓰인 위패를 모시다, '안할망신위'라고 새겨진 비석을 세웠다.

관청 할망당 들어가는 당 올레길 모습. 사진=작가 제공 관청 할망당 들어가는 당 올레길 모습. 사진=작가 제공

관청 할망은 악세서리를 좋아 한다고 소문이 났다. 제물로 목걸이, 팔찌, 반지 등 반짝이는 보석을 올려놓으면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니 여인의 속성을 대변하는 듯싶다. 가만히 가져간 진주 팔찌 하나를 신단 앞에 올렸다. 햇살 한줌이 문 사이로 들어와 진주알에 부딪쳤다. '번쩍' 빛 속에서 할망이 흡족했는지 영롱함이 시야를 밝힌다. 무슨 소원을 빌까. 남편은 퇴직을 했으니 승진운을 바랄일이 없다.

아이들도 모두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으니 그도 바랄일 없다. 그렇다면 가족의 화목과 건강을 빌어야 할까. 주춤주춤 망설이는데 고양이 두 마리가 신당 안을 기웃 거린다. 녀석들은 먹이를 기다리는 듯 천연덕스럽다. 그렇다면 관청할망은 이즈막 찾아오는 이들에게 귀금속 대신 먹을 음식을 원하고 있으려나.

일관헌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할망당으로 들어가는 당올레 길이 나온다. 오래된 느티나무와 팽나무 이파리 사이로 눈부신 하늘빛과 햇살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거센 태풍과 모진 비바람과 왜적의 침입까지 견디어 냈을 고목의 안위에서 미아가 되어 몇 세기를 넘나들어 본다.

지금의 성읍은 조선시대까지 정의현의 도읍지로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 등 1목 2현의 행정구역 중 하나였다. 문화재로 지정된 정의현성의 핵심 건물인 일관헌은 현감이 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각종 민원은 물론 죄인을 심문하던 곳이기도 했다. 백성들은 가고 싶지 않은 건물이며, 접근하기 어려웠던 장소 아니었을까.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 되었던 현청 뒤쪽에 신당이 있었으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신당이 관청 안에 있어 '관청할망당'이라 부르지만 마을 사람들은 '안할망' '안할마님' '관청할마님'이란 친근한 호칭을 사용하였다. 

관청할망의 유래는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가 여러 가지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당의 내력을 아는 방법으로는 본풀이 사설을 통해 짐작할 수 있지만 상세히 파악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에 따르면 장설룡, 송설룡 부부의 딸인 칠성아기는 중의 자식을 임신한 죄로 무쇠상자에 담겨 바다로 버려졌다. 그 상자는 함덕으로 들어와 제주시 칠성골로 옮겨져 조상신으로 모셔졌다. 그러다 칠성아기의 딸들은 제주성안 뿐 아니라 정의현과 대정현 등으로 시집을 와 칠성신으로 좌정하게 되었다.

관청 할망당 외부 모습. 사진=작가 제공 관청 할망당 외부 모습. 사진=작가 제공

정의현으로 시집 온 딸은 관리의 부인이 되어 마음대로 관청에 들락거릴 수 있었다. 그녀는 인물이 뛰어나고 영리했으며 매사에 비범했다. 특히 '앉아서 천리, 서서 만리'를 내다보는 신통력을 보였다. 그런 탓에 관청의 관리들조차 그녀를 따랐으며 사람들의 청탁이 줄을 이었다. 그녀는 서민들의 억울함과 하소연을 많이 들어 주었다. 그녀를 만날 때면 치장을 좋아하는 성향에 맞춰 사람들은 악세서리를 선물 했다. 비씬 보석과 귀금속이 아니라도 마음에 들어 했으려나. 죽어서도 자신을 찾아와 극진히 비는 이들의 소원을 이루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겉모습과 속마음이 달랐던 그녀를 재물만 탐하는 욕심쟁이로 보지 않았다.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며 해결해 주려 노력한 의인으로서 관청 안에 있어야 할 '안할망'으로 의지했다.

요즘 시대에 '청탁'은 큰일 날 일이지만 과거 사정을 염두에 두었을 때, 긍정적인 내력담이 아닐 수 없다. 제주의 비극인 4.3사건 때도 모든 마을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성읍만은 큰 문제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주민들은 관청할망을 잘 모셨기 때문에 여신의 영험함으로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대개의 신들은 기도를 잘 들어 주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모시지 않으면 흉험도 안겨준다. 관청할망당 신은 일은 잘 되게 이루어주면서 죄에 대한 벌은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뒤끝 없는 따뜻한 여신인 셈이다. 취직이나 승진, 시험합격 등의 기원을 이루게 해 주면서 모든 이들에게 신뢰와 신망을 얻었으니 존경할 수밖에 없는 할망이다.

본래 '안할망'을 '관청할망'이라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 칠성신은 개인집 고팡(부엌 창고) 뿐만 아니라 관청에서도 모셔왔다. 칠성의 근원이 된 관청할망당의 여신은 성읍리 마을 공동의 문제에서부터 개인의 건강과 소송 등 크고 작은 액운을 총괄해서 해결해 준 다정한 존재였다. 그러기에 정해진 제일은 따로 없지만, 개인별로 시간과 날을 택일하여 지금도 매 3 그릇과 제숙, 과일, 술, 귀금속 등을 가져가 부와 무사안녕을 빌고 있지 않은가. 

◆이명진 주요 약력

△강원도 춘천 출생 △'해동문학' 수필 등단(1997) '수필과 비평' 평론 등단(2011) △제주 성산 문화 발전소 대표 △경기도 문학상 수상, 일신수필문학상 수상, 풀꽃수필문학상 수상, 신곡문학상 수상 △수필집 '창밖의 지붕' '탈출기' '물숨의 약속' 외 2권 △평론집 '수필로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