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국립대생, 대학예산 증액 요구하며 밤샘·거리수업 시위

연합뉴스 2024-10-16 12:00:43

'재정균형' 밀레이, 대학예산 30% 삭감…'국립대학 예산법안'도 거부권 행사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 (UBA) 수리과학대 밤샘 시위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아르헨티나 국립대생들이 극우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의 국립대학 예산 삭감에 반발해 지난주에 이어 15일(이하 현지시간)에도 거리 수업과 대학 건물 점거 등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학교(UBA)의 여러 단과대를 비롯해 전국 국립대의 60여개 단과대에서 14일 밤 학생 회의를 열어 대학 건물 점거에 들어갔으며, 학생들은 대학 내에서 밤샘을 하면서 시위를 이어갔다.

대학은 학생들에 의해 점거되었으나, 강의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으며,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여러 방식으로 반정부 시위를 펼쳐갔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한 예로, 교수와 학생들은 대로변에 칠판과 의자를 설치해 거리 수업을 하면서 '국립대를 수호하자'란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전했다.

이번 시위에는 그동안 시위에 참여하지 않던 단과대들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보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역사보다 오래된, 411년 전통이 코르도바 국립대 법대가 역사상 최초로 대학 점거에 동참했으며, UBA 법대, 의대 및 상경대 등 소위 보수적이고 엘리트를 지향하는 단과대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미 국립대생들은 '국립대를 수호하자'란 모토 아래 지난 2일 제2차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이에 많은 학생과 시민이 가담해 전국에서 주최측 추산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시위에 참여한 바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당시 시위는 국회 양원을 통과한 '국립대 재정예산법안'을 밀레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발표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개최됐다.

밀레이 대통령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거부권을 행사했고, 다시 국회 하원으로 돌아간 법안은 결국 하원을 통과하지 못하고 폐지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키르치네르 문화원(CCK) 이름 개명 행사에서 "국립대에는 부자 혹은 중상층 이상만 다니고 가난한 사람은 못 다닌다"라면서 "국립대는 더 이상 사회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되지 못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아르헨티나 국립대는 학사과정 학비가 전액무료로 사회 신분 상승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국민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국립대 예산을 재정 균형이라는 명목하에 무려 30% 이상 삭감한 밀레이 대통령이 이에 정반대되는 발언을 해 국립대생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셈이됐다.

문제는 대학 예산의 대부분이 인건비로 지난 7월 기준으로 교수 월급은 전년 대비 33.3%의 구매력을 잃었으며, 9월 기준으로 90%의 국립대 교수들이 가난하다는 통계가 국립대 붕괴의 위험성을 의미한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일간지 라나시온은 UBA 농대의 경우 이미 30여명의 교수 및 연구진이 최근 대학을 떠났으며, 35∼40세 젊은 교수진의 월급은 평균 80만 페소(약 88만원)로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도 구매하지 못하는 가난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에밀리아노 야고비티 UBA대 부총장은 "2025년 예산이 국회를 통과되면 아르헨티나 국립대는 내년에 문도 열지 못할 것"이라며 국회에서 내년 국립대 예산을 바로잡아달라고 촉구했다.

국립대생들은 이번 주 내에 학생 회의를 통해 다음 시위 계획을 세울 예정이며, 오는 17일 국립대 노조 총파업 이후 또다시 대규모 시위를 준비할 수도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거리 수업을 위해 UBA 상경대 앞에 놓인 의자들

sunniek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