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임금차별 금지' 이끈 美활동가 레드베터 별세

연합뉴스 2024-10-15 16:00:32

오바마 정부서 차별금지법 통과…"용기, 기회, 진보의 대명사"

릴리 레드베터

(서울=연합뉴스) 김계환 기자 =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 금지 운동을 전개했던 릴리 레드베터가 사망했다. 향년 86세.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레드베터의 가족들은 "특별한 삶을 살았던" 그녀가 지난 12일 호흡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레드베터는 타이어업체인 '굿이어 타이어 앤드 러버'(굿이어)에서 19년간 재직하다 1998년 퇴직하기 몇 달 전 자신이 남성 동료들보다 임금을 적게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송을 제기, 2003년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굿이어 측의 제기로 이뤄진 항소심에서는 차별대우가 시작됐을 때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에서도 대법관 9명의 의견이 팽팽히 엇갈린 가운데 차별적 급여 결정이 내려진 후 180일 이내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5대4로 굿이어 측의 승리로 끝났다.

그렇지만 레드베터는 이후에도 의회에 여성과 남성 간의 임금 격차 문제를 해결하도록 계속 촉구하는 등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 금지 운동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2009년 의회가 마침내 임금 차별 소송 제기에 대한 시간제한을 완화한 '릴리 레드베터 공정임금법'(Lilly Ledbetter Fair Pay Act)을 통과시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월 취임 후 첫 번째로 서명할 법안으로 '릴리 레드베터 공정임금법'을 선택해 레드베터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명했다.

레드베터는 지난 2008년과 2012년 두차례에 걸쳐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을 전당대회에 연사로 참여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레드베터는 그녀보다 먼저 산 수많은 미국인이 했던 일을 했다면서 그녀는 자신을 위해, 자녀와 손자를 위해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뤄냈다고 추모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어 레드베터가 선구자나 유명인이 되려고 한 적이 없다면서 그녀는 단지 자신의 노력에 대해 남자와 같은 대가를 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되돌아봤다.

2009년 공정임금법 통과 당시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도 소셜 미디어에 임금 차별에 맞서 싸우고 딸과 손녀들의 정의를 위해 싸운 릴리 레드베터의 이름은 용기, 기회, 진보의 대명사라는 헌사를 남겼다.

미 최대 노동단체인 노동총연맹(AFL-CIO)은 레드베터가 공정임금을 위해 노력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앨라배마주 캘훈 카운티의 시골 마을인 포섬 트로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레드베터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한 제너럴 일렉트릭(GE)을 거쳐 굿이어에서 일했으며 1998년 퇴직했다.

그녀의 유족으로는 딸 비키 레드베터 색슨과 아들이 필립 C. 레드베터, 여러 명이 손주가 있으며 남편인 찰스 J. 레드베터는 2018년에 사망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릴리'라는 영화로도 제작돼 이달 초 공개됐다. 릴리 역은 패트리샤 클락슨이 맡았다.

k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