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경 대모' 정영선 "아이들을 위한 조경 운동 하고파"

연합뉴스 2024-10-15 00:00:49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선정…"죽기 전날까지 활동할 것"

"외롭고 아픈 사람 위로하는 공간 만들려 노력"

인터뷰하는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올림픽공원, 선유도공원, 여의도샛강생태공원, 경춘선 숲길, 예술의전당,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식물원.

서울 시민이라면 한 번쯤은 찾아가 봤을 법한 이 명소들에는 공통 분모가 있다.

'한국 조경의 대모'로 불리는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83)다.

국내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인 정 대표는 '조경 설계' 분야를 개척해 온 산 증인이다.

1964년 서울대 농과대학 농학과를 나와 1975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제1기로 졸업한 후 1980년에는 한국 최초로 국토개발기술사 자격을 땄고, 여성 기업인을 찾아보기 힘들던 1987년 조경설계업체 서안을 설립했다.

14일 서울대 제78주년 개교기념식에서 고(故) 김민기 학전 대표,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함께 '제34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된 정 대표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선친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미개척 분야인 조경 설계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버님이 교사였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여러 곳에 이사하면서 좋은 정원을 손수 가꿨는데 그런 일을 할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갔다"며 "좋은 정원이라고 해서 화려한 꽃을 심은 것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가꿨다. 물을 주는 것부터 돌을 옮기고 나무를 바꾸고 꽃을 심는 것까지 어릴 때부터 같이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반세기에 걸쳐 꽃과 나무로 땅에 시를 쓴 예술가로 평가받으며, 작년 9월에는 '조경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제프리 젤리코 상을 받았다.

정 대표는 서울 예술의전당,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와 기념공원, 대전 엑스포 박람회장, 한국종합무역센터(현 코엑스), 국립중앙박물관,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경춘선 숲길, 선유도공원 등의 조경을 설계했다.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서울식물원, 양재천, 석파정, 탑골공원, 광화문광장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이 만든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작품 가운데 특히 도시공원이 많은 것과 관련해서는 "나 혼자 잘나서 한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생태적으로 돌보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분야의 생태학자가 너 나 할 것 없이 모였다. 나는 그걸 이끌어 주는 정도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도시공원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항상 외로운 사람, 아픈 사람, 위로가 필요한 사람 등을 위한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직접 한 모든 작품이 사랑스럽지만, 큰비가 오면 한강 쪽에 있는 것들은 걱정도 된다"며 "그렇다고 유난히 더 좋은 애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정 대표는 앞으로도 미래세대를 위한 공간을 가꿔나갈 계획이다.

그는 "죽기 전날까지 주어진 재능을 십분 발휘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며 "미래세대를 위한 정원 운동을 열심히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좋은 정원을 본다고 해서 아이들이 커서 조경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민이 조경을 찾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내 집, 내 학교, 내 교실에 스스로 풀 한 포기 기를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honk021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