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요정' 20주년 맞은 김성녀 "영광과 고통 같이 준 작품"

연합뉴스 2024-10-15 00:00:43

"'활화산 연기'서 '힘 뺀 연기'로 변신…1인 32역 연기도 거뜬히"

남편 손진책, 든든한 연출 뒷받침…31일 세종문화회관서 개막공연

20년간 '벽 속의 요정' 공연 이어온 김성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제게 월계관의 영광과 함께 고통도 같이 준 작품이에요."

마당놀이로 친숙한 원로배우 김성녀(74)가 자신의 대표작인 뮤지컬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의 20주년 공연을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선보인다.

2005년 초연한 '벽 속의 요정'은 스페인 내전 당시 30년 동안 벽 속에 몸을 숨기고 살아간 아버지와 딸의 실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일본 작가 후쿠다 요시유키의 원작을 극작가 배삼식이 우리 상황에 맞게 재구성했다. 한국전쟁으로 30년을 벽 속에 숨어 살아온 아버지와 홀로 가정을 지킨 어머니, 벽 속에 요정이 산다고 믿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홀로 무대에 오르는 김성녀는 5살 아이부터 아버지, 어머니, 요정까지 32개 역할을 연기하는 동시에 노래 12곡까지 선보인다.

공연 20년 맞은 '벽 속의 요정'

개막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바쁜 나날을 보내는 김성녀가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벽 속의 요정' 20주년 기념공연의 속내를 밝혔다.

50대 중반에 시작해 어느덧 70대 중반이 된 김성녀는 지난 20년간 '벽 속의 요정'과 완전히 동화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마당놀이로 대중적 인기를 받았지만, 연극배우로서 인지도가 부족한 제게 배우로서의 위상을 돌려준 작품"이라며 "첫 공연에서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고 10년 동안 공연하겠다고 장담했었는데 어느새 20년을 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소회를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쉰 2020년과 2021년을 빼고 해마다 무대를 올린 '벽 속의 요정'은 김성녀에게 애증이 교차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늦은 나이에 처음 시도한 1인극 연기는 그에게 감정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는 "연기를 하면서 '모노드라마가 이렇게 힘들고 외롭고 어렵구나'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면서 "진부한 연기가 되지 않을까 항상 조바심을 내며 연기를 했었다"고 밝혔다.

20년간 사랑받은 공연 '벽 속의 요정'

그렇게 한 작품을 20년 동안 하면서 이제는 능수능란하게 힘 조절이 가능한 작품이 됐다고 한다. 김성녀는 "초반에는 마치 활화산처럼 연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힘 조절이 가능한 공연이 됐다"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내 나이에 맞는 연기와 노래를 하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연기에 힘을 덜어내니 혼자서 32개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그는 "마당놀이와 창극 등 다양한 무대 장르에서 많은 역할을 연기한 경험이 있기에 1인 32역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32번의 연기 전환이 관객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지에 초점을 두고 연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녀는 이번 20주년 공연을 향후 자신의 연기 생활에 '바로미터'로 삼을 계획이다. 공연의 완성도를 점검해 내년에도 공연을 이어갈 것인지를 결정하겠다는 심산이다. 김성녀는 "이번 공연이 잘 되면 30주년까지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제 마음에 안 들면 이번 공연으로 마무리할 생각"이라며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도전하고 싶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사말하는 김성녀

이번 공연에도 47년을 함께 한 남편 손진책이 연출가로 나서 든든한 구원군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 연출가인 손진책은 아내와 함께 20년간 이어온 이번 공연이 현시대를 사는 많은 관객에게 특별한 의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이 작품은 비극적인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도 생명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찬가"라며 "인간의 존엄 문제가 절실한 현시점에서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상의 연극 관람 환경이 보장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의 첫 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3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는 최상의 음향·조명 시설을 갖춰 다양한 연출 시도가 가능한 무대다. 손진책은 "대극장과 소극장을 가리지 않고 공연했지만, 이 작품은 특히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인사말하는 손진책 연출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