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헛갈리는 표현 쓰기법-④

연합뉴스 2024-10-14 15:00:33

|강성곤 전 KBS 아나운서.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위원. 가천대 특임교수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알은체/ 알은 척

'새벽은 할 수 없지만 일어나야 하는 시간

고요함에게서 배우는 시간

새로운 오늘과 마주하는 처음

늘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기업 광고 문구 중 일부다.

'할 수 없지만 일어나야 하는 시간?' 이렇게는 쓸 수 없다. 여기 서 '하다'는 'do'가 아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나 도리 없이'라는 일종의 굳어진 관용표현인 '할 수 없이', '하는 수 없이'를 써야 옳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표현으로는 '하릴없이'가 있다. 형용사 '하릴없다'에서 나온 것으로 붙여 쓴다. 역시 '달리 어떻게 할 도리 가 없이'의 의미를 띤다. 또한 '조금도 틀림이 없이'의 뜻도 있다. 정말 할 일이 없는 것은 '할 일 없이'다.

◇ 행여/ 혹여

'행여幸-'는 원래 긍정적인 의미일 때만 사용했다. 행幸에서 감지할 수 있다. 행여는 '행여(나) 오실까', '행여 만나려나' 등의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혹여或如'를 써야 꼭 들어맞을 때가 있다. ①이건 어쩌다가 혹시 ②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에 ③어쩌다 우연히 등 세 개의 어의(語義)를 가지지만, 혹(或)에서 느낌이 오듯 좋지 않은 일에 써야 걸맞다.

'혹여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혹여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등이 적합한 예다.

◇ 결단/ 결딴

'결단決斷'과 '결딴'은 다르다.

'어떤 일이나 물건 따위가 아주 망가져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다', '살림이 망하여 거덜 나다'를 표현할 때는 '결단나다'가 아니라 동사 '결딴나다'를 써야 한다. 순우리말이다. 사역형은 '결딴내다'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

"이번 일은 사장님께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주식 때문에 빚을 많이 진 탓에 가정경제가 결딴났다"

'결딴나다'와 비슷한 '절딴나다', '절단나다'는 모두 방언이다.

◇ 횡경막?

횡격막(橫隔膜)은 가슴과 배를 나누는(隔) 가로무늬 근육을 말한다.

발음이 표기에 영향을 미쳐 오류가 나는 경우가 있다. 횡격막을 횡경막으로 잘못 쓰는 게 대표적이다. 비슷한 예를 모아봤다.

'찰나(찰라 X) | 남녀(남여 X) | 옥니(옹니 X) | 말발(말빨 X)'

'어물쩍(어물쩡 X) | 앳되다(앳띠다 X) | 어중되다(어중띠다 X)'

'들입다(드립다 X) | 이따가(있다가 X) | 본떠(본따 X)'

'사그라들다(사그러들다 X) | 금세(금새 X) | 폭발(폭팔 X)'

'얽히고설키다(얼키고설키다 X) | 생때같은(생떼같은 X)'

◇ 장이/ 쟁이

'장이'는 숙련된 기술이 있어야 한다. 미장이, 유기장이, 대장장이, 땜장이 등이 그 예다. '쟁이'는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멋쟁이, 빚쟁이, 약쟁이, 거짓말쟁이, 방귀쟁이, 풍각(風角)쟁이가 여기 해당한다.

맨 뒤의 예인 풍각쟁이도 노래나 악기 연주가 필요하니 기술로 볼 수 있겠으나, 기술보다 속성으로 친다.

'멋쟁이'를 제외하고 대개 '쟁이'는 겸양이거나, 상대가 이쪽 편을 낮잡아 부를 때 쓰여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가령 작가 스스로가 '글쟁이'라고 하면 겸손한 표현이 되지만, 상대가 그렇게 칭하는 건 적절치 않다. 말이 많거나 말을 잘하는 사람을 얕잡아 '말쟁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아나운서들이 즐겨 쓴다. 그러나 타 직종 종사자가 아나운서를 이렇게 부르면 비례(非禮)에 해당한다.

은퇴하는 유명 언론인이 스스로 '방송장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여기서는 맥락으로 보아 자신을 낮추고자 하는 의도로 보이니 '방송쟁이'가 걸맞다.

◇ 얼르다?

'어린아이를 달래거나 기쁘게 해주다', '어떤 일을 하도록 사람을 구슬리다'

이 뜻을 가진 동사는 '얼르다'가 아니라 '어르다'다.

용언의 원형과 활용에 평소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어는 계통과 형태에 있어 교착어(膠着語), 첨가어(添加語)의 특징을 지닌다. 어근, 원형에 어미, 접사 등이 수시로 들러붙는 언어인 셈이다.

'어르다'는 '어르고/어르지/어르며/어르자/얼러/얼러라' 등으로 활용된다.

'엄마가 아기를 어르고 있다'

'그는 울고 있는 아이를 얼러봤다'

바로 이런 점이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국어의 매력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어르다'의 뜻풀이에 '구슬리다'가 등장한다. '구슬리다'는 '그럴듯한 말로 꾀어 마음을 움직이다'라는 뜻이다.

'구슬리다'는 '구스르다'로 잘못 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구슬리지/구슬리고/구슬려/구슬려라'로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구슬르지/구슬르고/구슬러/구슬러라'로 쓰지 않게끔 유의하자.

'아이의 고집은 아무리 어르고 구슬러도 막무가내였다 (X)'

'아이의 고집은 아무리 어르고 구슬려도 막무가내였다 (○)'

'네가 친구를 잘 구슬러봐 (X)'

'네가 친구를 잘 구슬려봐 (○)'

'진작에 그이를 그렇게 구슬르지 그랬어 (X)'

'진작에 그이를 그렇게 구슬리지 그랬어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