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우리나라의 고구마술

연합뉴스 2024-10-14 15:00:33

|신종근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감자와 함께 대표적 전통 구황작물인 고구마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이며 멕시코 고산지대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한다.

고구마가 전파된 경로는, 과거에는 콜럼버스 등의 대항해시대 탐험가가 신대륙에서 원주민의 고구마를 가져와 보급했을 거라 봤으나 일부 고고학자와 식물학자는 신대륙이 발견되기 훨씬 전부터 다른 지역에서도 서식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지역에는 16세기 멕시코를 점령했던 스페인이 태평양을 건너 필리핀 마닐라를 점령해 전파했다. 이후 고구마는 명나라 전역에 퍼진 후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쿠왕국에도 전래했다.

1609년 류쿠왕국이 일본의 사쓰마번(오늘날의 가고시마현)에 복속돼 일본에도 전파됐다.

사쓰마 지역으로부터 보급됐기 때문에 사쓰마 지역의 '마'(이모, 芋)라는 뜻에서 '사쓰마이모'(サツマイモ)라고 불렸다.

1763년 (영조 39년) 일본에 조선통신사로 가던 조엄은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발견해 고구마를 조선에 보냈다. 당시 조선은 기근으로 굶주린 백성이 많았고 조엄은 고구마를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 일대 섬에서 재배하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 보낸 고구마는 재배에 실패했다. 이듬해인 1764년 조엄은 귀국길에 다시 고구마를 가지고 들어와 동래부사에게 전했고 드디어 고구마 재배에 성공했다.

애민 정신이 뛰어났던 문익공 조엄의 묘소는 강원도 원주에 있으며 그를 기리기 위해 '조엄 기념관'을 2014년에 건립했다. 한옥 형태로 건립된 기념관에는 조엄의 생애와 고구마 전래과정, 고구마 활용에 대한 영상과 사진, 서책자료 등이 전시돼있다. 기념관 주차장 옆 텃밭에는 고구마를 심어 경작하는 공간으로 고구마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사쓰마이모로 불리던 고구마는 대마도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해주는 감자란 뜻의 '효행우'(孝行芋, 고코이모)라 불렀는데 조엄은 '고귀우마' (古貴爲麻)라 발음한다고 조선통신사 기록인 그의 저서 해사일기에 썼고 '고귀우마'가 '고금아'로, 다시 고구마로 발음이 바뀌게 됐다.

조엄 진영,1770~1775년 제작 추정

일본 규슈 지방에서는 고구마 재배를 특히 많이 했다. 이곳의 고구마를 원료로 하는 소주인 '이모죠츄'는 상당히 유명하다. 이모죠츄는 지역 특산주로 확고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도 꽤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고구마 소주가 있다.

고문헌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에 청주인 '감저주'(甘藷酒)를 밑술로 삼아 증류해 만들던 고구마 소주, 일명 '감저소주'(甘藷燒酒)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그 흔적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감저는 고구마의 한자 표현이다.)

서유구(1764-1845)가 한자로 쓴 전통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의 감저소주 제조법을 바탕으로 국순당이 고구마소주 '려'를 복원하기도 했으며 그외 여러 업체에서 고구마술을 제조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만들거나 판매 중인 고구마술을 소개해보겠다.

먼저 고구마로 만든 막걸리는 옥주 고구마 막걸리(서울 옥수주조), 톡쏘는 고구마 동동(경기 가평 우리술), 부자 자색 고구마 막걸리(경기 화성 배혜정도가), 천등산 고구마막걸리(충북 충주 고헌정), 자줏빛 고운님(전북 익산 명인양조), 보라(전남 영암 월출도가), 땅끝 누리 해남 고구마 막걸리, 해남 고구마 모주(전남 해남 옥천주조), 무안 황토고구마 막걸리(전남 무안 망운주조장), 고메순, 고메진(경남 통영 한산도가), 욕지도 고구마 막걸리(경남 통영 욕지도양조장) 등이 있다.

국내 생산 고구마 막걸리

고구마 소주와 약주는 주연향 야수S(인천 강화 주연향), 양조학당 서(경기 광명 한국양조연구소), 려(경기 여주 국순당 여주명주), 필(경기 여주 술아원), 순설(강원 홍천 설악양조), 백로(대구 금복주), New 맛있는 참(대구 금복주), 화심(경기 구리 화심주조), 고백주(경북 안동 회곡양조장, 약주) 등이 있다.

국내 생산 고구마 소주

이처럼 고구마술은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고 또한 조선시대에 마시던 고구마술도 대부분 현대에 이어지지 않고 있어 많은 양조장이 저마다 실험에 나섰다.

대중이 즐겨 마시는 희석식 소주의 재료로 쓰이던 고구마는 1970년대부터 타피오카로 대체되면서 우리술에서의 고구마의 역할은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양조장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고구마술을 만들었으며, 위의 술 외에도 고구마술은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중 고구마로 유명한 해남의 고구마술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전남 해남 자색고구마의 붉은빛을 담은 고구마 소주는 지난 2015년 출시된 송우종명가(대표 송우종)가 출시한 '주랑게'다. 송우종명가는 자색고구마 막걸리에 이어 고구마 소주를 만들어 낸 지역 양조장이다.

붉은빛 고구마 소주

쌀 60%에 자색고구마 40%를 섞어 전통 증류방식으로 만들어내는 고구마 소주 '주랑게'는 일반첨가물을 넣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담백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럽고 혀끝에 감도는 향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랑게 알코올 도수는 19.5도다. 통상 유통되는 일반소주 16∼19도보다 다소 높지만 쌀과 고구마로 만들어 숙취가 없다는 것이 송 대표의 전언.

백미를 고두밥으로 만들어 한 달간 발효 후 증류, 증류 후 70∼80도의 술에 정제수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맞춘다. 현재는 1일 2만병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고 한다.

고구마 소주 살펴보는 송우종 대표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