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의 '2인자' 차별…우방궈 '후한' 장례 vs 리커창 추모는 차단

연합뉴스 2024-10-14 13:00:28

우방궈 장례일 전국에 조기 추모…"당·국가의 탁월한 지도자" 평가

리커창 별세 1주기 마라톤 행사들 연기…'경제 침체' 속 추모 열기 차단 의도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 당국이 우방궈 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한국의 국회 격) 상무위원장에 대해선 후한 장례식을 해준 반면 리커창 전 총리에 대해선 1주기 기일과 그즈음 열리는 마라톤 행사마저 연기토록 하는 등 대조적인 조처를 해 눈길을 끈다.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

우선 우방궈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후진타오 국가주석 시절 권력 서열 2위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공산당 선배 격 원로라는 점에서 예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리커창 전 총리는 시 주석 1·2기 집권기에 명목상 2인자였으나, 사실상 시 주석 정적이었던 탓에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인 듯하다.

14일 홍콩 명보와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8일 사망한 우 전 위원장은 이날 베이징에서 화장되며, 중국 권력 중심인 톈안먼(天安門)·신화먼(新華門)·인민대회당·외교부, 31개 성·시·자치구 당 위원회와 홍콩·마카오, 각 재외공관에 조기를 달아 추모한다.

중국 당국은 우 전 위원장을 "중국 공산당의 우수한 당원, 오랜 기간 검증된 충실한 공산주의 전사, 뛰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1941년 중국 동부 안후이성에서 태어난 우 전 위원장은, 칭화대 무선전자학과 출신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로 상하이가 정치적 기반이며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이끈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의 대표 인물로 승승장구했다.

후 전 주석 시절 공식 서열 2위(현재는 3위)인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올라 2013년 퇴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 우 전 위원장과 당시 권력 서열 5위 시진핑 국가부주석 간에 다툼은 알려진 게 없다.

당시엔 집단지도체제가 잘 지켜졌기 때문에 서로 영역 침범을 할 계기가 없었을뿐더러, 태자당 계열의 시 전 국가부주석이 상대적으로 세력이 강한 상하이방 소속의 우 전 위원장과 맞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우방궈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

그러나 리 전 총리의 입장은 이와 크게 달라 보인다.

명보는 이달 27일 리 전 총리 별세 1주년과 이를 전후해 중국 내 여러 도시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마라톤 대회가 갑작스럽게 연기됐다고 보도했다.

안후이성에서 이달 중에 열릴 마라톤 행사 8개(이 중 4개는 27일 예정)가 다음 달로 연기됐으며, 27일 개최될 계획이던 허난성 정저우와 후난성 화이화 하프마라톤 행사도 미뤄진 것이다.

해당 마라톤 대회 조직위들은 "참가 선수들에게 불편을 끼쳐 사과한다. 숙박 취소 등으로 발생한 경비 손실을 보상하겠다"고 밝혔으나, 연기 사유에 대해선 일체 함구하고 있다고 명보는 전했다.

외교가에선 리 전 총리의 별세 1주년에 마라톤 행사 등으로 추모 열기가 고조되는 걸 막는 한편, 자칫 반(反)정부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목적으로 일부 마라톤 대회 연기 조처를 한 것으로 본다.

실제 리 전 총리가 심장마비로 급사했던 작년 10월 27일 이후 그의 고향인 안후이성 허페이와 거주지였던 정저우에 지지자들이 꽃다발 등을 들고 모여 추모 열기가 끊이지 않았다.

별세 이틀 후 열린 정저우 마라톤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리 전 총리 사진을 들고 애도의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사실 리 전 총리는 말 그대로 '비운의 인물'이다.

후 주석 재임 시절 시 전 국가부주석 바로 아래로 권력 서열 6위의 상무부총리였고 시 주석 집권 이후 서열 2위의 총리에 보임됐으나, 그 이후 공산당의 암묵적 룰이었던 집단지도체제를 부정한 시 주석의 '독주' 속에 실권 없는 2인자로 추락해 '속앓이'만 하다가 돌연 심장마비로 숨져 안타까움을 사 왔다.

리커창 별세 꽃 추모

시 주석이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호랑이 사냥'을 명분 삼아 정적 수천 명을 제거하고 지난 2022년 10월 제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이라는 절대권력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리 전 총리 '자리'는 없었다.

집단지도체제를 바탕으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원을 진두지휘하는 '2인자' 총리를 꿈꿨던 리 전 총리는 주요 경제정책 관여하는 것도 차단됐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보다는 사회주의에 방점을 두고 경제·외교·군사·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맞선 '대국굴기'의 길로 들어선 시 주석 주도의 중국이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 정책에 따른 첨단 기술 진입 차단과 수출 급감, 내수 침체 등 악재로 허덕이는 가운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리커창 추모 열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는 관측도 있다.

시 주석 '경제 실정'에 불만이 커지는 속에서 중국 당국이 생전 리 전 총리가 펼쳐온 시장 경제에 방점을 둔 합리적 경제 운용에 대한 향수가 커지는 걸 차단하는 데 발 빠르게 대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