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군 이스라엘 도발에 조용…정치 갈등에 '약한 군대' 신세

연합뉴스 2024-10-14 00:01:15

15년간 내전·종파갈등에 방어능력 못 키우고 국내 안정·민간인 지원만

국민 신뢰는 높고, 정예 특수부대도 갖춰…안보리 결의 이행시 역할 커질 듯

12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레바논 베이루트 남쪽 건물 옆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레바논 정규군 병사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이스라엘군이 국경을 넘어 레바논 남부를 침공,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지상전을 치르는 동안에도 레바논의 정규군은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레바논에서 가장 힘 있는 무장세력은 국가의 정규군이 아니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 헤즈볼라다. 헤즈볼라는 현재 레바논 남부지역을 통제하고 있다.

이에 비해 레바논 정규군은 격동의 역사와 복잡한 국내 파벌 정치로 인해 세력을 키우지 못했다.

13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레바논 정규군은 15년간 이어진 내전이 끝난 1990년부터 주로 국내 종파간 갈등을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해왔다.

병력은 약 8만명이지만 공군이 없어 자국에서 헤즈볼라에 맞설 수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할 수도 없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도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대신 민간인 지원으로 역할이 제한됐다.

레바논의 싱크탱크 '정책 이니셔티브'의 사민 아탈라 이사는 FT에 "(레바논군은) 영토를 방어할 자원이 없다. 오히려 국내 안정 유지에 쓰인다"고 말했다.

1990년 내전이 끝나고, 레바논에 주둔했던 시리아군이 2005년 철수한 이후에도 레바논 정치권은 종파 간 경쟁과 군사적 힘의 분배에 몰두했다. 여러 종파가 섞인 군에는 관심이 없었고, 이는 정규군이 강력한 군대로 발전하는 것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 내전의 결과 군 내부에서도 종파를 따라 분열했고, 많은 군인이 군을 나와 민병대에 합류했다.

아탈라 이사는 "레바논 정치권은 역사적으로 파벌의 통제를 벗어난 강한 군대를 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아람 네르귀지안 수석연구원은 최근 레바논 정부가 정규군의 방어 능력에 제대로 돈을 쓴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레바논군은 장비·시설이 부족하고 대부분의 진지는 노출돼 있어 쉽게 외부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군은 신뢰도가 높은 기관 중 하나다. 레바논의 모든 종교 파벌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레바논 남부지역과 수도 베이루트에서 피란 온 많은 시아파 무슬림들은 종파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바논 정규군은 평화유지 역할 수행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레바논의 궁핍한 나라 살림은 군에도 큰 타격을 줬다.

퇴역 준장 사미 라마는 2019년 레바논 재정 위기 이후 연금이 월 4천달러에서 500달러로 폭락했다며 "빈곤의 가장자리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군 말단 계급의 급여는 월 100달러 수준으로, 군인들에겐 생계를 위한 부업이 허용된다.

레바논 남부 국경을 바라보는 레바논군

레바논 정규군에도 강점은 있다. 헤즈볼라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인 2006년 이후 레바논 정규군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문화, 현대화됐다.

정예 특수부대가 그중 하나로, 네르귀지안 연구원은 이를 '이 지역 가장 유능한 대테러 부대 중 하나'라고 불렀다.

레바논군은 이를 통해 일부 무장단체와 싸워 이길 수 있었고, 2017년 시리아 내전 중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가 국경을 위협했을 때도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 접경지역을 방어하는 국경 연대 4개도 설립했다.

레바논 정규군의 역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01호가 이행된다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보리 결의 1701호는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지상전을 종식하기 위해 채택됐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레바논 리타니 강 이남에는 헤즈볼라를 제외한 레바논군과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UNIFIL)만 주둔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헤즈볼라를 비롯한 다른 무장단체가 철수하지 않아 결의안은 그동안 실효가 없었다.

레바논군의 훈련을 도왔던 영국은 결의 1701호가 이행될 경우 국경 방어를 위해 1천만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는 최근 한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레바논은 휴전 후 결의를 이행할 준비가 됐다면서도, 먼저 군이 더 나은 장비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noma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