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재현된 베로나 오페라…'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연합뉴스 2024-10-13 11:00:40

베로나페스티벌 무대 그대로 옮겨와…세계적 성악가들의 완벽한 무대

공중 마이크의 풍성한 음향은 '합격점'…인근 공연장 소음은 '오점'

오페라 '2024 투란도트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공연 모습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마치 짐승처럼 몸을 웅크린 130여 명의 합창단과 연기자들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냉혹한 공주 '투란도트'의 억압적 통치에 고통을 겪는 베이징 시민들이다.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군중'으로 묘사된 이들의 강렬한 존재감은 공연 내내 무대를 압도했다.

지난 12일 저녁 서울 잠실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세계적인 연출가 고(故) 프랑코 제피렐리의 2010년 프로덕션이자 2024년 베로나 페스티벌의 개막작이었던 오페라 '2024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서울 공연의 막이 올랐다.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솔오페라단이 주최한 공연이다. 공연 전 리셉션에서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 아레나 디 베로나의 제너럴 매니저 체칠리아 가스디아, 솔오페라단 이소영 단장, 제피렐리 프로덕션의 리바이벌 연출가 스테파노 트레스피디 등이 각각의 환영사를 통해 양국 간의 문화적 유대와 이번 공연의 의미를 강조했다.

수수께끼 문답을 주고받는 '투란도트'와 '칼라프'

침략자의 손에 희생된 선대 공주의 영혼에 빙의돼 남성을 증오하는 '투란도트'는 청혼자들에게 3개의 수수께끼를 내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곧장 처형해버린다. 이날 '투란도트' 역을 노래한 우크라이나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는 날카로운 음색과 히스테릭한 고음으로 주인공의 개성을 명료하게 표현했다. 목이 잘리는 청혼자들을 목격하고도 용감하게 도전하는 '칼라프' 역의 독일계 브라질 테너 마틴 뮐레는 탁 트인 고음과 관객을 몰입시키는 극적 표현력, 날렵한 움직임과 담대한 연기 등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최고의 무대를 선사했다. 특히 그의 3막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네순 도르마, Nessun dorma)는 객석을 열광으로 채웠다.

'칼라프'의 진심에 사랑을 깨닫는 '투란도트'

관객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은 '류' 역의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안젤라 시칠리아는 천상의 음색과 절절한 연기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류'가 '칼라프'를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3막 장면은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이탈리아의 유명 베이스 페루초 푸를라네토의 원숙한 가창과 연기를 '칼라프'의 아버지 '티무르 왕' 역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유연한 연기를 보여준 중국 관리 '핑', '팡', '퐁', 그리고 '알툼 황제'와 '만다리노' 역의 조역까지도 나무랄 데 없는 배역이었다.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음악감독 다니엘 오렌의 노련한 지휘는 뉴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00여 명의 연주자와 위너오페라합창단과 송파구립소년소녀합창단, 송파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반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합창단을 여유 있게 이끌어갔다. 1막 도입부에서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다소 흔들리기도 했지만, 곧 안정을 찾아간 오케스트라는 활력이 넘치면서도 강약의 차이와 템포 변화가 선명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류' 역의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안젤라 시칠리아의 노래

특히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 연주하는 구간)에서 오렌은 대단히 섬세한 표현력을 보여주었다. 이 밖에도 정민근무용단, 진아트컴퍼니와 이탈리아에서 온 아레나 디 베로나 연기자들이 다 함께 제피렐리의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연출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신비로운 조명 아래 드러난 베이징 황궁의 구조와 색채감, 에미 와다의 정교하고 찬란한 의상 등도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우려가 컸던 공연장 음향은 다행히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출연자 의상이나 신체에 마이크를 부착하고 노래하는 대신 공중에 마이크를 설치한 덕분에 고음이나 포르테(강하게 노래하는 구간)에서 음이 파열하는 문제를 피할 수 있었다. 기계적으로 소리를 키웠다는 사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지만, 감상에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음량 자체도 베로나 현지 공연에서 듣던 음량과 아주 비슷하게 세팅돼 그 치밀한 기술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1만5천 석의 KSPO돔 좌석 가운데 9천8백 석을 객석으로 개방한 이번 공연의 무대와 좌석배치, 자막 전광판의 위치까지도 역시 베로나 페스티벌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형태였다.

오페라 '2024 투란도트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공연 모습

다만 아쉬웠던 점은 근처에서 진행된 다른 뮤직페스티벌 공연의 연주 소리가 관람을 방해했다는 점이다. 무대 맞은편 상부 객석에서는 타악기의 울림이 계속 들려 오페라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의자의 삐걱거림과 팔걸이에서 나는 작은 소음, 스태프의 잦은 통행으로 분위기가 산만했다는 관객들의 지적도 많았다.

공연은 19일까지 계속된다.

rosina03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