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씨말리는 불법 조업, 피말리는 단속…제주해경 24시

연합뉴스 2024-10-13 09:00:56

특수기동대원 태운 고속 단정 16㎞ 떨어진 중국 어선 향해 질주

1박 2일 제주해양경찰청 외국 어선 불시 검문검색 동행 취재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불법조업 어선 검문검색을 위한 사전 정보회의가 열립니다. 작전회의실로 모여 주기 바랍니다."

외국 어선 불시 검문검색 나선 해경

지난 10일 오전 제주시 마라도 남서쪽 50㎞ 해상.

1박 2일 동행 취재를 위해 이날 오전 8시께 서귀포시 화순항에서 제주지방해양경찰청 5002함에 승선한 지 약 2시간 만에 정보분석팀장 주재 아래 외국 어선 검문검색 사전 정보회의가 열렸다.

해경은 지난달 중국 유망과 선망 어선이 조업을 다시 시작한 데 이어 고강도 조업방식인 중국 타망 어선 휴어기가 이달 중순부터 종료됨에 따라 횡행할 불법 조업에 대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이날 검색 대상은 5002함으로부터 16㎞ 떨어진 해상에서 조업 중인 중국 선적 선망 어선 A호(300t·승선원 20명).

A호는 조업 허가를 받았지만, 올해 처음으로 우리나라 해역에 들어온 어선으로 해경은 위반 사항 여부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불법 조업 시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정책 기조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보회의가 끝나자마자 선미에 모인 5002함 해경 특수기동대는 일사불란하게 안전모와 삼각봉, 통신기 등 복장을 갖추고 "최강 5002함 화이팅" 구호를 외치며 사기를 높였다.

검문검색은 실제 중국 어선에 올라타 검색을 벌일 특수기동대원이 타는 '넘버 1' 단정과 검문검색 동안 주변 안전 관리를 할 '넘버 2' 단정이 한 조를 이뤄 진행됐다.

기자는 단정에 오를 취재진 4개 팀 중 유일하게 '넘버 1' 단정에 탑승했다.

단속 어선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호기롭게 손을 들었지만, 긴장감에 한껏 올라온 심장 소리는 파도 소리만큼 쿵쾅댔다.

검문검색 동행 취재를 위해 제주해경청 5002함 '넘버 1' 단정에 탑승한 백나용 기자

단정 앞 좌석 등받이를 마치 '생명줄' 마냥 꽉 붙들어 맨 탓에 "몸에 너무 힘을 주면 충격에 허리가 나갈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지만, 힘을 빼기는 쉽지 않았다.

5002함에서 해상에 내려진 단정은 모터 굉음과 함께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출발했다. 물살을 빠르게 가르는 단정은 인천 월미도 명물 '디스코 팡팡'을 연상케 했다가도, 물살을 타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급하강하는 후룸라이드를 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높은 파도를 타면 충격이 곱빼기로 컸던 탓에 단정 바닥이 바닷물이 아닌 땅과 부딪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혼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수백번은 단정을 타고 임무를 수행했을 특수기동대도 몇번씩이나 '악'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살고자 하는 마음에 저절로 몸에 힘도 빠졌다.

8분 정도 물살을 갈라 단속 대상 중국 어선에 가까이 다가가자 고막을 찢을 듯한 '삐용, 삐용'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정선을 명령하는 중국어 방송이 송출됐다. 특수기동대원 중 한 명은 힘차게 깃발을 흔들며 중국 선원에게 단속을 알렸다.

외국 어선 향해 정선을 명령하는 깃발 흔드는 해경

속도를 높여 달아나는가 싶더니 결국 멈춰 선 중국 어선 옆으로 단정이 바짝 붙자 특수기동대는 신속하고 기민하게 어선 위로 올라탔다.

어선에 올라탄 특수기동대는 먼저 조타실을 장악하고 어업 허가증과 승선원 명부를 확인했다. 선망 그물코 크기가 규격인 30㎜에 부합하는지도 샅샅이 살폈다.

A호는 전날 만선이 돼 이미 어획물을 운반선으로 이동시킨 상태라 어획물 확인이나 조업 일지 대조는 이뤄지지 않았다.

불법 사항이 확인되지 않자 특수기동대는 우리 측 해역에서 지켜야 할 주의 사항을 한 번 더 당부하고 다시 단정에 승선했다.

특수기동대를 태운 단정은 숨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두 번째 검문 대상인 중국 선적 선망 어선 B호(300t·승선원 21명)를 향해 물살을 갈랐다.

그 사이 날씨는 점점 궂어졌다.

파도인지 비인지 모를 물방울이 떨어지고, 너울은 크기를 키워 코앞에 있는 중국 어선이 반쯤 보였다 말았다 했다.

배만 타면 멀미약을 먹어도 빙빙 돌 만큼 멀미가 심한 기자지만, 혹시나 올해 초 불법 조업 단속을 하던 목포해경에 쇠 파이프를 휘두른 중국 선원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긴장한 탓인지 신기할 만큼 멀미가 나지 않았다.

높은 너울

다행히 두 번째 검색도 큰 충돌 없이 지나갔다. 불법 사항도 발견되지 않았다.

약 50분간 이뤄진 검문검색이 끝나고 다시 5002함으로 복귀하는 사이 기자가 옆에 있던 특수기동대원에게 "고되지 않느냐"고 묻자 "조금 전 단속한 어선 선원들은 대체로 온화한 편이었다"며 "단속 과정에서 선원과 해경 간 긴장감이 돌 때도 많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 번 검문검색을 벌이면 3∼4시간은 파도를 맨몸으로 맞서야만 하는 상황이라 임무가 끝나면 온몸이 아프다"며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가를 받아 조업한 경험이 많은 중국 어선의 경우 최근 본국에서 주의사항에 대한 교육을 받고, 출항 전 점검까지 이뤄지면서 불법 사항이 적어졌지만, 허가받지 않은 불법 어선은 성능이 좋은 레이더를 설치해 감시망을 피해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도주 수법도 날로 교묘해져 어선 여러 척을 전용 홋줄로 묶고 해경이 어선에 등선하면 옆 어선으로 뛰어넘은 다음 홋줄로 끊고 달아나는 이른바 '연환계' 방식으로 단속을 피해 빠져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예 해경이 어선에 오르지 못하도록 배에 쇠 파이프나 철망을 설치하거나 조타실 창문을 플라스틱 재질로 바꿔 망치로 쉽게 깨지 못하도록 개조하기도 한다고 해경은 전했다.

한중잠정조치수역 경계에 몰려 있는 중국 어선

밤에도 멈추지 않는 임무 수행

우여곡절 끝에 5002함으로 다시 복귀하자 다행히 쉴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함정 위에서의 휴식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노트북을 펼쳐 단정에서 촬영한 사진을 정리하는 일뿐이었다.

종종 문자 수신은 됐지만, 카카오톡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출항한 지 12시간이 지난 오후 8시께 지루하다 못해 고독하다고 느낄 때쯤 제주시 차귀도에서 남서쪽으로 112㎞ 떨어진 한중잠정조치수역 경계에 도착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중국 어선 수십척이 내뿜는 빛만이 주변을 비췄다.

이날 해경은 남해어업관리단 국가어업지도선 무궁화호와 함께 이튿날 오전 5시까지 경계 주변 129㎞ 거리를 순찰하면서 우리 측 해역에서 치고빠지기식 조업을 시도하는 중국 어선을 사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5002함 신경진 함장은 "고도화한 경비 차단 방법으로 불법 행위에 대해 적극 대응하면서 해양 주권 수호와 소중한 어자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 위 함정

dragon.m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