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과학적 근거로 증원" vs 의대교수 "의료비만 늘릴 것"(종합)

연합뉴스 2024-10-10 19:00:27

의료개혁 토론회서 정부-서울대 교수들, '의대 증원' 놓고 갑론을박

"사실상 4천명 이상 증원해야" vs "증원한다고 지역 가지 않아"

이견 크지만 양측 모두 "희망의 싹 봤다", "이런 자리 계속되길"

서울대 의대에서 열린 의정 간 첫 공개 토론회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권지현 기자 = 의료공백 상황이 8개월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참여하는 의정 토론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의대 정원 2천명을 늘리기로 했다고 주장했고, 서울대 의대 교수 측은 의대 증원이 의료비를 늘릴 뿐 정작 필요한 지역의료 강화에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반박했다.

견해차가 커 의정 대화가 급진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첨예한 갈등의 해소를 위한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양측은 의의를 찾았다.

악수하는 장상윤 사회수석-하은진 비대위원

◇ 대통령실 "과학적 근거로 증원규모 내놨다…고령화로 의료수요 급증"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10일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연 토론회에서 먼저 발제를 맡아 의사 증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장 수석은 "정부는 충분히 과학적 근거로 증원 규모를 내놨는데, 정부가 참고한 3개의 전문가 연구에서 2035년에는 의사가 1만명 부족하다고 했다"며 "이 연구들에서 몇 가지 비현실적 가정들까지 보완해 보니 부족한 의사 수는 1만명이 아니라, 2배 이상 늘어나 사실상 (1년에) 4천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장 수석의 발언 도중 객석에서는 "시뮬레이션 해봤느냐", "거짓말이잖아"라는 고함이 들리기도 했다.

객석을 향해 자제를 요청한 장 수석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앞으로 만성질환 2개 이상을 가진 65세 이상 인구가 매년 50만명씩 늘어나 의사 손길이 더 필요해지고, 의사의 사회·경제적 처우는 오히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수석은 최근 논란이 된 응급실 문제를 두고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응급실 상황이 어려워졌는데, 응급실 문제가 곧 의료개혁의 계기"라며 "응급의학과 전문의나 배후진료, 필수의료 전문의가 수도권도 부족하고 지역으로 가면 더 부족한 상황으로, 기본적으로 물리적 (의사) 숫자가 부족하단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관해서는 "그동안 건강보험 재정에만 의존해온 필수의료 살리기에 국가 재정을 내년부터 투입한다"며 "현재 적립금이 28조원가량 남아있으니 이를 최대한 활용할 텐데,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내는 건강보험료도 늘어서 전체 재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정 간 토론회

◇ 서울의대 교수들 "의사 늘리면 의료비도 늘어…증원한다고 지역 안 가"

이에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의사 수가 많아지면 의료비 지출도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2030년 의료비는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6%로, 현재 건강보험료의 1.6배를 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GDP 대비 의료 비용이 늘어나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서울대 홍석철 교수의 연구 자료를 인용해 "25∼64세 인구의 연간 건강보험 추가 부담액은 2030년에 60만원, 2040년에 136만원, 2050년에 201만원으로 예상한다"며 "급증하는 의료 비용과 함께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역의료 소멸이 한국의료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지난 10년간 의사 수가 서울에서는 늘었지만, 충남이나 경북 등 지역에서는 늘지 않았다"며 "(의사 증원보다는) 필요한 곳에 의사가 가게 해주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측은 증원보다는 동네 병의원에서 상급종합병원까지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이 쏠리는 현상을 먼저 해소하면 굳이 의사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은진 비대위원은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 가는 이유는 한 번에 여러 진료과를 갈 수 있어서다"며 "(동네 병의원) 1차 진료 영역에서도 다학제 진료를 할 수 있게 수가를 만들면 절대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미 국내 의사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3배에 이르는 의료 이용과, 2배에 가까운 입원을 커버해왔다"며 "아까운 돈을 의사를 늘리는 데 쓰지 말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먼저 쓰는 건 어떨까 싶다"고 제안했다.

응급의료센터에서 구급차로 환자 이송

◇ 양측 모두 "희망의 싹 봤다", "이런 자리 계속되길"

서울의대 측은 전체 의사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우선 의정 양측이 이해의 폭을 넓힌 뒤에 개혁을 추진해 줄 것을 정부 측에 요청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의료 서비스 소비자들도 지금 정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많은데, 뭔가를 좋게 하기 위해서는 다 같이 이해하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일단 (정책 추진을) 멈추고 이해를 얻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측은 이날 견해 차이를 좁히지는 못했지만, 토론회를 계기로 향후 의정 대화가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장 수석은 "허심탄회한 토론의 장이 마련돼 희망의 싹을 본 것 같다"며 "여야의정 협의체나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또 오늘 같은 자리 등 형식을 떠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대화 창구는) 언제든지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강 비대위원장은 "이런 자리가 계속되기를 바란다"며 "의료개혁특위는 결정권이 없는 대통령 자문기구이고 투명하지 않으므로 먼저 투명하게 만들어주시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s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