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보낸 20년 추억…한국 문학에 푹 빠진 영국인 주교

연합뉴스 2024-10-10 12:00:43

英 더럼대 동양박물관 한국실서 특별전…흑백 사진·유물 등 소개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 첫 채용…2026년 한국실 개편 추진

고전문학 연구하는 리처드 러트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영국 성공회 선교사인 리처드 러트(1925∼2011)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한국 땅을 밟았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젊은 성직자는 전쟁의 잔해로 가득한 서울에서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서울과 경기, 대전 등에서 목회 활동을 한 그는 한국의 언어·역사·문화에 심취해 20여년간 한국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고, '노대영'이라는 한국 이름을 받았다.

1950∼1970년대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영국인 주교, 리처드 러트를 조명한 전시가 영국 현지에서 열린다.

휘문고 영어교사로 활동했던 리처드 러트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5월 4일까지 더럼대 동양박물관(Oriental Museum)에서 '함께 엮다, 리처드 러트와 조앤 러트의 한국에서의 삶과 유산' 전시를 선보인다고 10일 밝혔다.

리처드 러트 부부가 한국에서 수집하거나 선물 받은 다양한 유물을 소개하는 자리다.

동양박물관 측은 누리집을 통해 "리처드 러트가 1954년 선교사로 처음 한국에 도착한 지 70주년, 리처드 부부가 1974년에 한국을 떠난 지 5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리처드 러트가 20여년간 한국에 머무르며 촬영한 사진이 눈길을 끈다.

세례를 주는 리처드 러트

성직자로서 세례를 주는 모습, 교인들과 남긴 기념사진 등 한국에서 보낸 일상이 곳곳에 남아있다. 시조, 한시 등 한국 고전 문학을 연구한 흔적도 돋보인다.

박물관에 따르면 리처드 러트는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1168∼1241)의 산문과 한시 여러 편을 번역했으며, 1971년에는 총 264편의 시조를 번역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한국어를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시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하고자 저술한 시조집은 한국어 문학 번역의 최고 역작 중 하나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노씨 가문 종친회 모임에 참석한 모습

전시에서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1897∼1970)의 부인 이방자(1901∼1989) 여사의 자서전 영문판을 펴낸 아내 조앤 러트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룬다.

이 밖에도 병풍, 가구, 문방구, 복식, 종교 물품 등 한국 관련 자료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번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원을 받아 채용된 동양박물관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유물을 수집·관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가 꾸민 첫 전시다.

리처드 러트와 조앤 러트 부부

2013년 문을 연 한국실에 전담 큐레이터가 생긴 건 올해가 처음이다.

동양박물관은 런던을 제외하면 영국 내에서 가장 많은 한국 문화유산을 소장한 곳으로, 러트 부부는 1991년을 시작으로 다양한 유물을 기증해왔다.

박물관은 전담 큐레이터와 함께 2026년쯤에는 한국실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역·기관 특성에 맞는 한국실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며 "세계 각지에 잠재적 한국 문화 애호가를 길러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더럼대 동양박물관 한국실

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