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이은준의 AI 톺아보기...예술이 AI 필터링에 막힌다면

연합뉴스 2024-10-10 00:00:35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이은준 교수

영국 런던에 가면 '뱅크시'(Banksy)라는 자칭 '예술 테러리스트'라는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필자도 여러 차례 영국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운이 좋으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뱅크시는 '표현의 자유'라는 의제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는 영국을 기반으로 1990년대부터 자기 신원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그라피티(Graffitti, 낙서처럼 보이지만 풍자와 의미를 담은 벽화) 작가와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사람이다.

대표작으로 '풍선과 소녀', '꽃을 던지는 사람'이 있고 사회 풍자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주제 의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새 뱅크시 작품 촬영하는 런던 시민들

뱅크시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접 그린 것도 있지만 보도 사진이나 다른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업이 상당하다.

'표현의 자유'라는 의제의 상징이며 늘 이를 실천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였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하며 작업을 확장하는 순간 '필터링'이라는 복병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에 휩싸였다.

◇ AI 필터링 필수의 시대

흑인 트럼프 지지자를 묘사한 거짓 AI 이미지

필자는 앞서 게재한 칼럼에서 인공지능 프롬프트 필터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말 그대로 필터링은 자동으로 걸러내는 기술이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구동하려면 필수적으로 명령어인 프롬프트를 제대로 작성해야 한다.

정치 이슈, 가짜뉴스 방지, 성적 악용 금지 등의 현안으로 필터링은 당연히 적용돼야 한다.

교도소의 트럼프? "AI가 만든 가짜사진"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등장한 초기에는 이러한 필터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현재도 국가별로 필터링에 대한 다양한 법안과 정책이 나오고 있다. 아직도 진행형이다. 특히 가짜뉴스와 관련된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는 반드시 필터링으로 규제해야 한다.

◇ 예술도 필터링하는 AI

한편으로 이런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 이슈와 성적 악용에 대한 우려로 필터링이 예술작품에도 같은 기준으로 적용될 경우, 예술가가 의도하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받을 수 있다.

창작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저해할 수 있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필터링의 기준과 적용 범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독자 여러분께 질문드린다. 아래의 이미지가 과연 부적절한 내용인 'NSFW(not safe for work) 콘텐츠로 봐야 할까?

부적절한 이미지의 분류 사례

뱅크시처럼 많은 예술가는 종종 사회적, 정치적, 또는 문화적 논쟁을 촉발하고자 작품을 창작한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드러내고, 기존 사회 규범에 도전하는 역할도 한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필터링 시스템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광범위하게 적용될 경우, 예술적 표현에도 '사전검열'이 이뤄진다. 의도하지 않은 검열이라 더욱 엄중한 사안이다. 당연히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

특히, 예술가가 사회적 비판이나 풍자를 목적으로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할 때 해당 주제에 대한 필터링이 존재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창작하려는 메시지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술 작품 제작의 본질적 의미와 자율성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위의 사례처럼 현재의 필터링 기준으로는 어떤 예술가가 인공지능을 이용해 르네상스 시대의 누드 예술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고 했을 때, 'nudity'나 'body' 같은 키워드가 자동으로 차단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품을 완성할 수 없게 된다면, 예술가가 표현하려는 작품의 미학적, 철학적 의미를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 장애 요소가 된다.

이러한 필터링 시스템이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성적 표현에 대한 내용을 무조건 차단하면, 창작의 자율성을 제한하게 된다.

◇ 사회적 비판과 풍자의 제한

미드저니 같은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은 특정 인물, 특히 연예인이나 정치인 혹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풍자를 생성하지 못하도록 필터링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Biden', 'Trump', 'election'과 같은 키워드는 자동으로 필터링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행태가 정치적 풍자를 예술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가로막는 것이며, 정치적 예술 활동을 제한한다고 보고 있다.

해리스와 트럼프

이러한 필터링은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사가 논란을 피하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 대중을 위한 조치고 정책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렇지만 예술적 표현을 지나치게 막아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적 표현은 복잡한 맥락과 다층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단순히 단어나 이미지를 차단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예술 작품에서는 특정 주제나 키워드가 사용되더라도, 그 맥락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비판적, 혹은 풍자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술을 모르는 일반인이 보더라도 뱅크시의 작품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에 담긴 깊은 풍자와 맥락 덕분이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있으므로 보다 다양한 고려가 수반돼야 한다. 그러한 고려를 할 줄 모르는, 아니 할 수 없는 인공지능 필터링 시스템이 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차단할 경우, 예술적 표현이 지나치게 억제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손해는 결국 대중에게 오롯이 돌아온다. (계속)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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