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호텔 화재는 인재…"경보기 정상 작동했다면 7명 중 5명은 살았을 것"

데일리한국 2024-10-08 16:51:24
'7명 사망' 부천 호텔 화재. 사진=연합뉴스 '7명 사망' 부천 호텔 화재.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나혜리 기자] 지난 8월 투숙객 7명이 숨진 경기 부천 호텔 화재는 안전 관리와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일어난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부천 호텔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건물 소유주 A(66)씨 등 4명의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8일 밝혔다.

이들 중에는 호텔 운영자 B(42)씨, A씨의 딸인 C(45·여)씨, 호텔 매니저 D(36·여)씨도 포함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호텔 화재는 7층 객실의 방화문이 열려 있어 연기가 복도로 빠르게 확산했고, 여기에 호텔 직원이 화재경보기를 임의로 껐다가 2분가량 뒤 다시 켜 투숙객 대피도 늦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7층 810호 객실에 설치된 벽걸이형 에어컨에서 처음 불이 시작한 것으로 판단했다.

2004년 준공된 이 호텔을 2017년 5월 인수한 A씨는 1년 뒤 모든 객실의 에어컨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영업 지장 등을 우려해 전체 배선을 바꾸지 않고 기존 전선을 계속 쓴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에어컨 설치 업자는 전선의 길이가 짧아 작업이 어려워지자 기존 전선에 새로운 전선을 연결하고도 절연 테이프만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호텔 관계자들은 에어컨 정비 기사로부터 전선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화재 당시 경보기가 울리자 호텔 매니저 D씨가 일부러 기계 작동을 멈춘 사실도 수사 결과 드러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올라간 그는 화재를 확인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화재경보기를 다시 켰으나 이미 '골든타임' 2분 24초가 지난 뒤였다.

경찰은 사망자 7명 가운데 7∼8층 투숙객 5명은 화재경보기가 꺼지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D씨는 경찰 조사에서 "예전에 화재경보기가 잘못 울려 투숙객들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며 "비상벨이 울리면 일단 끄고 실제 화재인지 확인 후 다시 켜는 것으로 내부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처음 불이 난 810호 객실 현관문에 '도어 클로저'(자동 닫힘 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호텔 객실문은 상대적으로 방화 성능이 좋은 '갑종 방화문'으로 설치돼 있었지만, 도어 클로저가 없어 불이 난 810호의 객실문은 화재 당시 활짝 열려 있었고 연기가 복도와 위층으로 급속히 퍼졌다.

방화문은 항상 닫혀 있거나 화재 발생 시 자동으로 닫히는 구조여야 한다.

또 호텔 측이 환기를 이유로 7∼8층 복도의 비상구 방화문을 '생수병 묶음'으로 고정해 열어둔 상황도 피해를 키웠다.

화재 당시 7층 객실에서 지상에 설치된 에어매트(공기 안전 매트)로 뛰어내린 투숙객 2명이 사망한 상황과 관련해 경찰은 소방 당국에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여성 투숙객이 에어매트로 떨어지기 전 내부 화염이 매우 거세 소방 구조대원이 객실에 들어가기 어려웠고, 간이 완강기조차 없는 객실이어서 유일한 구조 수단은 에어매트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807호 객실 바로 아래 지상은 호텔 주차장 입구로 7도가량의 경사가 있었지만, 주변에 벽이 있어 건물에 에어매트를 밀착할 수 없는 상황으로 판단했다.

다만 경찰은 구조 장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을 소방 당국에 통보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