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별·정류장…"글쓰기 너무 떨려요" 외국인 한글백일장

연합뉴스 2024-10-08 13:00:13

연세대 한국어학당 개최…시·수필로 나눠 한국어 글쓰기 실력 겨뤄

글 주제 공개하자 장내 탄식·술렁…1천400여명 중 1등 '장원' 시상

연세대 한국어학당, 제30회 외국인 한글백일장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 = "좋아하는 단어는 '역지사지'예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다른 사람의 위치에서 생각해보라는 의미가 좋더라고요. 그런데 글쓰기는 너무 떨려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과정이 제일 중요하니깐 도전해보겠습니다."

성균관대에서 한국어교육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우즈베키스탄의 힐롤라(25)씨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뽐내면서도 백일장을 앞둔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578돌 한글날(10월 9일)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는 '제30회 외국인 한글백일장'이 열렸다. 이날 백일장에는 66개국 1천400여명의 외국인과 교포들이 참가해 한국어 글쓰기 실력을 겨뤘다.

현장에서 공개된 시와 수필의 주제는 각각 '별'과 '정류장'이었다.

주제가 발표되자 장내는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창환 서예가가 주제를 한 자 한 자 붓글씨로 적어 내려가자 참가자들은 "설마 정류장이야?", "너무 어려워" 등의 반응과 함께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붓글씨로 적힌 '제30회 외국인 한글백일장' 주제

"수필을 쓰려고 생각했는데 주제 '정류장'이 너무 어려워서 아직 고민 중이에요. 시도 어려워서 수필이 더 나을 것 같은데 큰일 났어요."

일본에서 온 산도 치아키(22)씨도 마찬가지였다. 3년 전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면서부터 한국어를 독학하고 반년 전부터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치아키 씨는 "(백일장이)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쓸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하다"고 웃었다.

역시 일본 출신인 사토미(22)씨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배웠던 단어들을 활용해서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연세대에서 국제협력을 공부하고 있다는 미국에서 온 스테파니(26)씨는 백일장을 앞두고 단어들을 적은 종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스테파니 씨는 "정류장으로 수필을 써보려고 한다. 먼 곳을 연결한다는 의미에 초점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며 "한국은 미국과 너무 달라 모든 것이 내게 새롭다"고 말했다.

모로코에서 온 하자르(19)씨는 단번에 주제를 정했다. 하자르 씨는 "별을 원래 좋아해서 한국 이름을 하나의 별, '한별'로 지었다. 별로 한번 써보겠다"고 말했다.

술렁이던 장내는 백일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적막해졌다. 참가자들은 가만히 한 곳을 응시하며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도,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기도 했다. 주제를 듣자마자 일필휘지로 술술 적어 내려가는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약 2시간의 백일장을 마치고 대강당을 빠져나오는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성취감이 교차했다.

사토미 씨는 "고등학교 때 친구랑 농구부를 하면서 놀았던 경험을 정류장이랑 연결해서 써봤다"며 "수필을 쓰고 나니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힐롤라 씨도 "정류장으로 주제에 맞게 쓰려고 했는데 잘 모르겠다"며 "한국어로 최대한 잘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전달하지 못한 느낌이 들어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에 다시 한번 참가해 보겠다"고 웃었다.

백일장 시상식은 오는 30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수상자는 장원(총장상 1명)과 금상(3명)을 포함해 총 62명이 선정된다.

연세대 한국어학당은 한글날을 기념해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을 대상으로 1992년부터 외국인 한국어 백일장을 열어왔다. 단순한 글쓰기 대회를 넘어 세종대왕의 창제 정신과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또박또박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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