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낡은 책의 재탄생"… 조용덕 예술제본 '최고장인'

연합뉴스 2024-10-08 09:01:59

움베르토 에코 책도 제본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예술과 장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프랑스 최고장인' 타이틀을 얻은 예술제본 전문가가 있다.

그는 파리서 20년 가까이 예술제본 '외길'을 걸어온 제본 전문가다.

오래된 고서나 훼손된 책도 예술적으로 복원하는 기술을 가진 그가 이제 국내로 들어와 국내 책들을 복원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 책 제본 장르의 최고 장인 자리에 오른다

예술적인 책 제본으로 지난 2019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최고장인(Meilleur Ouvrier de France·MOF)의 영예를 안은 조용덕(50) 씨.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책 제본 장르의 최고 장인으로 손꼽힌다.

MOF 콩쿠르는 1924년부터 프랑스 교육부·노동부 주관으로 4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

그 선정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프랑스 국가공인자격증 가운데에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프랑스 최고장인에 오르는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엘리제궁 리셉션에 초청받아 마크롱 대통령과 '셀카'를 찍기도 했다. 원래 어릴 때부터 미술과 무엇을 만드는 데 소질이 있었다는 그가 이 길로 들어선 것은 우연에 가깝다.

한국에서 원예학과를 졸업한 조씨는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다 영국으로 유학하러 가서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그러다 우연히 캘리그래피의 길로 들어섰고,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과정에서 제본에 관심을 두게 됐다.

20여년 동안 프랑스에서 제본 작업을 해 오던 그는 마침내 이 분야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던 그가 1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사라져가는 우리 책 문화를 보존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 캘리그래피에 매혹돼 시작한 제본 작업

그를 서울 송파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우선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캘리그래피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그가 직접 쓰고 그린 작품이다.

그 가운데 금박 그림으로 채워진 작품은 마치 유럽의 성에 방문했을 때 봤던 중세 시대 편지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확하게 잘 봤다고 했다.

그가 양피지에 직접 글 한 자 한자씩을 쓴 데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실제 금을 입힌 금박 세밀화를 그려 넣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 같았다.

그는 양피지에 관해 설명했다.

과거에는 실제 양의 가죽을 회(灰) 처리를 해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 썼다고 했다.

그는 "캘리그래피와 책은 떼 놓을 수가 없는 관계"라며 "인쇄의 발명 이전에는 손으로 필사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묶으면 곧 책이 되었다"고 말했다.

캘리그라피를 배우던 그는 옛 캘리그래피 책에서 본 수사들의 책 제본 장면을 우연히 보았다. 그것이 오늘날 그가 제본이라는 장르에 몸을 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또 "양피지에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는 모든 과정은 책을 만들기 위한 기본 과정들"이라며 "책이라고 하는 오브제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제가 쭉 훑어가면서 배운 결과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말인 제본(製本)이라는 용어보다 '제책'(製冊)이 올바른 표현이라고 말한다.

◇ 제본 작업은 책에 영혼을 불어넣는 과정

그의 손을 거치면 다 낡은 하나의 작품도 새로운 생명이 된 듯 되살아난다.

낡은 책을 제본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공방 내에는 기묘하게 생긴 망치와 끌 등 다양한 도구들이 수없이 많았다.

고서를 복원해 새 생명을 불어넣은 책은 예술에 가깝다.

오페라 라보엠 대본 원작을 복원한 책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한 권 소장하고 싶어졌다.

그는 과거 움베르토 에코의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던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서 더욱 심혈을 기울여 작업을 했다고 했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가 예술 평론가와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편지가 있었는데, 편지 모음집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1차 세계대전 시 참호에서 틈틈이 쪽지에 적은 할아버지의 메모를 제본해 달라는 손자의 요청이었다고 한다.

그는 "전쟁이라는 참혹하고 어려운 현장에서 영혼을 담아 쓴 필자의 작품을 책 모양의 종이상자 형태로 제본했던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다 헤어진 40년 이상 된 불경을 복원하는 일이다.

의뢰자는 어머니의 불경이 다 헤진 것이 안타까워 조 씨에게 작업을 의뢰했다고 한다.

벌써 몇 달째 작업을 하고 있지만 투명 비닐 테이프 등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바람에 작업을 끝마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낡은 책을 제본하는 과정은 시간과 싸움이라고 한다.

그는 책 커버를 염소 가죽으로 곱게 단장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최고장인 타이틀을 받은 조씨는 이제는 서울의 공방에서 낡은 종이책을 부활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