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고수봉, 국내 대표 안무팀 ‘나나스쿨’ 총감독

스포츠한국 2024-10-07 17:31:09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국내를 대표하는 안무팀 ‘나나스쿨’은 1997년 창단했다. ‘나나스쿨’이란 이름은 의성어 ‘나나나~’에 힌트를 얻은 것으로, 국내 최고의 댄스/안무전문학교를 추구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창립 30년을 눈앞에 둔 역사만큼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스타들의 안무를 작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효리, 비, 보아, 동방신기, 신화, 젝스키스, 2PM, 소녀시대, 원더걸스, 트와이스, 태연, 서태지, 신승훈, 아이유, 몬스타엑스, 스트레이키즈, (여자)아이들, 아이브, 엔믹스 등 많은 아티스트에서 엠넷 ‘마마어워즈(MAMA)’, KBS2 ‘불후의명곡’, TV조선 ‘미스터트롯2’ ‘미스트롯3’ ‘미스터로또’ 등 각종 행사‧방송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안무작업을 했다. ‘2024 MAMA’ 및 각종 연말 콘서트는 물론 ‘쿨’ 이재훈을 비롯해 내년 신승훈 단독 콘서트 등등 많은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나나스쿨’을 거친 전문 댄서(안무가)가 300명이 넘으며 그중엔 최영준, 손성득 등과 같은 K팝계를 대표하는 스타 안무가들도 있다.

나나스쿨은 서초동에 둥지를 튼 이래 포이동, 반포, 그리고 2000년대로 들어와 신촌, 광흥창, 용산 등 여러 곳으로 연습실을 옮겼다. 2023년 11월 마포 성산동으로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암동에 대부분의 방송사가 몰려 있다 보니 접근성 차원에서 쉬운 곳을 알아보던 중 성산동으로 결정한 것이다.

현재 ‘나나스쿨’은 팀 내 가장 오랜 경력의 총감독(치프 디렉터) 고수봉을 비롯해 이원신 대표(CEO), 양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리고 3명의 팀장(김기현‧심은지‧김사랑)과 팀원 이원태, 성주영, 박희진, 주연희, 신한별, 이정미, 이재이, 이민아 등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대내외 전반 업무를 총괄하는 이원신 대표는 JYP 안무팀 충원이나 트레이닝 등을 맡아서 하고 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에선 K팝 1세대 아이돌팀에서 최근 가장 핫한 아이돌은 물론 솔로 가수에 이르기까지 ‘나나스쿨’의 역사와 함께한 안무가 고수봉(46)을 만났다.

고수봉 감독은 K팝 아이돌부터 트로트에 이르기까지 전천후 소화력이 강점이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무대에 서는 것도 돋보인다.

고수봉 감독은 ‘나나스쿨’ 창단 다음 해인 1998년 팀에 입단했다. 98년 핑클이 ‘Blue Rain’으로 데뷔하며 안무팀에 합류하게 됐는데 이게 ‘나나스쿨’과의 첫 인연이다. 고수봉은 핑클 이전인 96년 ‘언타이틀’ 공연 무대에 서며 댄서로 데뷔했다. 언타이틀 공연이 큰 무대에서 잡히면서 안무팀을 충원해야 했다. 따라서 이 공개 오디션에 합격해 언타이틀 안무팀에서 1년 넘게 활동했는데, 유명 안무가이자 교수 정진석도 이때 함께 합격해 고수봉과 활동했다.

90년대 후반부터 국내 여러 스타들의 안무를 맡아 일하다가 99년 현역 입대로 잠시 공백이 생긴다. 전역 후 얼마 되지 않아 2005년부터 정진석과 공동 단장(팀장)이 돼 나나스쿨을 이끌었다. 전임 단장들이 다른 쪽으로 이직하면서 승진 기회가 빨리 온 것이다.

트로트가 막강한 영향력으로 부상한 만큼 ‘나나스쿨’도 얼마 전부터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 등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안무를 맡기 시작했다. 또한 유명 트로트 가수의 안무 트레이닝 등 음악적 외연을 더욱 확장해 갔다. 트로트 방송 프로그램을 맡아서 하긴 처음이라 전체적으로 애로사항도 많았다.

고수봉 감독은 “방송 제작자‧작가들이 원하는 그림이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것과 맞지 않아 방송 초기엔 많이 부딪혔습니다. 그간 해오던 일반적인 아이돌 댄스 흐름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죠. 이렇게 흘러가야 하는데 다른 걸 요구하는 등 그래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방송하며 적응이 되더군요.”

고수봉 감독은 ‘미스터트롯2’, ‘미스트롯3’, ‘미스터로또’ 등 여러 트로트 프로그램 출연자 안무를 지도하며 특히 돋보이는 가수로 박지현을 꼽았다.

“박지현은 너무 열심히 하는 노력파입니다. 박지현은 처음엔 아예 춤을 못 췄어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정말 많이 발전한 ‘괄목할만한’ 사례입니다. 그만큼 대단한 노력파이기도 했죠. 안성훈은 재미있는 캐릭터 요소를 갖고 있어 코믹한 요소들에 장점을 보였고 진해성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2020년 강원도에서 싹쓰리 뮤직비디오 촬영 때 이효리(앞줄 가운데)와 함께. [사진제공=고수봉] 2020년 강원도에서 싹쓰리 뮤직비디오 촬영 때 이효리(앞줄 가운데)와 함께. [사진제공=고수봉]

고수봉 감독은 그간 ‘나나스쿨’과 함께한 솔로 가수 중 이효리, 비, 장우혁을 최고로 꼽았다.

“이효리는 자기 음악과 안무, 의상까지 직접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스타일입니다. 전체적인 무대 퀄리티를 위해 남다르게 고민 많이 하는 아티스트죠. 댄스 아이디어만 좋은 게 아니라 그에 맞는 의상과 악세사리 아이디어까지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는 예는 흔치 않아요. 그래서 이효리와 함께 일하면 그만큼 진도가 빠르고 수월해집니다. 이효리는 표정 연기도 탁월합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이쁜 각이 나오는지도 잘 간파하고 있어요. 안무 소화력은 최고라고 말하고 싶어요.”

“비(정지훈)는 항상 앞서갔습니다. 이번 앨범을 하는 와중에 이미 다음 앨범에 대한 콘셉트를 구체적으로 짜놓았죠. 그래서 안무 또한 그에 대한 대비를 용이하게 할 수 있었어요. 대단한 아티스트랄 밖에요.”

“장우혁은 팝핀을 베이스로 자신의 스타일을 잘 완성해 갔습니다. 이외에 동욱(세븐)이는 매우 착하고 배려심도 많을 뿐 아니라 춤 또한 뛰어났어요. 함께 하면서 한 번도 힘들었던 게 없던 것 같아요. 신화 멤버들과도 합이 잘 맞았죠. 신화도 아이디어와 (에너지 넘치는) 댄스 실력이 좋았습니다. ‘쿨’도 기억에 남습니다. 재훈이 형과는 워낙 친분이 있고 그만큼 잘 통했죠. 항상 긍정 마인드로 음악과 춤을 대하는 분입니다.”

2019년 일산 공연 때 비와 함께. [사진제공=고수봉] 2019년 일산 공연 때 비와 함께. [사진제공=고수봉]

최근 아이돌팀 중에선 스트레이키즈를 꼽았다.

“댄스 수준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됐습니다. 잘하는 팀이 너무 많아서 한둘을 꼽기엔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근래 아이돌 팀 중에선 스트레이키즈가 잘하는 것 같아요. 전체적인 합과 개개 역량 모두 좋습니다. 아이디어도 좋고. 특히 스트레이키즈는 몸에 대한 표현력이나 그루브감이 남다릅니다. 강약 완급조절, 즉 몸을 잡고 풀고 할 때의 텐션도 탁월합니다.”

“걸그룹 중에선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우아 등이 돋보입니다. ‘우아’의 나나(권나연)는 여자임에도 파워풀한 동작도 잘 나오고 테크닉 컨트롤이 아주 좋습니다.”

90년대의 1세대 K팝 아이돌과 지금의 대세 아이돌팀의 안무 차이, 특장점에 대해 고수봉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장르가 한두 개 정도였다면 2000년대 이후 ‘어반’이란 장르가 도입되며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큰 동작 위주였다면 지금은 테크니컬 동작이 많이 들어가고 있죠. 멤버들 각자 안에서 갖고 노는 타입의, 다시 말해 기술적으로 매우 정교한 개인기가 많이 발휘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장르마다 음악적 특징이 있어 안무하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가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노래 내용에 맞는 걸 많이 생각하고 그에 맞게 안무 동작도 짜게 되죠. 발라드의 경우 오히려 좀 더 도전적 실험적인 걸 담으려고 해요. 발라드는 템포가 느리고 비트는 약한 장르죠. 따라서 이러한 걸 염두에 두며 연출 전반에 신경을 더 많이 써서 곡에 액센트를 주려고 합니다. 댄스음악은 이미 정확하게 비트가 나뉘어 있고 (율동) 기승전결도 확실하므로 비트에 착착 잘 떨어지게 하는 쪽에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물론 발라드와 댄스 등 모든 음악의 가사와 전체적 스토리에 가장 큰 비중을 두며 안무를 짭니다.”

안무라는 건 창작의 고통이 함께한다.

“뭐든 쉬운 건 없다고 봅니다. 노래를 듣고 한 번에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안무가 나오는 게 있는가 하면 일주일을 들어도 나오지 않는 것도 있어요. 나상도 ‘콕콕콕’은 곡을 처음 받자마자 아이디어가 떠올라 금세 안무한 예죠. ‘콕콕콕’을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따라서 가사마다 동작들이 바로 나왔습니다. 1~2시간 만에 전체적인 안무 틀을 완성했죠.”

“나상도는 처음엔 잘 못했는데, 연습을 너무 열심히 했어요. 잘 안되는 동작이 있으면 저한테 ‘100번 (연습)하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혼자 벽을 보며 실제로 100번이나 같은 동작을 될 때까지 연습할 만큼 대단한 노력파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매우 잘합니다.”

고수봉 감독은 작곡듀오 ‘알고보니 혼수상태’ 안무도 원포인트 레슨 형태로 짧은 시간 지도해 화제를 모았다. 고 감독은 알고 보니 혼수상태의 안무 얘기를 할 때 쉴 새 없이 웃었다. 그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던 걸로 보였다.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처음엔 춤이 전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할 때 그들만의 바이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무를 지도하며 너무 재미있었어요. (웃음) 정확한 동작은 아니지만 둘이 할 때 합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고 둘은 너무 열심히 연습했어요. (웃음) 처음 춤 실력이 거의 제로였다면 이후 70점 이상은 올라왔다고 봅니다.”

노래와 댄스를 함께 하면 음을 정확하게 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부분도 염두에 두며 안무하고 진행한다. 라이브로 할 때 노래하기 어려운 부분에선 가수와 상의해 동작을 수정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고수봉의 롤모델은 세계적인 안무가 ‘마티 쿠델카(Marty Kudelka)’다. 이외에 안무가 정진석 교수(서종예)를 높게 평가하며 자극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정진석은 참 잘합니다.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현재 아이돌 댄스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최영준도 언급하고 싶어요.”

“근래 인상 깊게 본 다른 안무가의 작품으로 스트레이키즈 ‘소리꾼’을 꼽고 싶습니다, 전체적인 노래 분위기 표현을 너무 잘했죠. 그리고 브루노 마스와 비욘세가 함께한 슈퍼볼 하프타임쇼도 인상 깊게 봤습니다. 둘의 조합이 너무 환상적이고 무대 연출과 세팅도 탁월합니다.”

고수봉 안무 세계의 집약이라 할만한 곡을 꼽는다면?

“효리 ‘텐 미닛’, 세븐 ‘라라라’, 비 ‘널 붙잡을 노래’입니다.”

'나나스쿨'과 처음 함께 하던 21살 때 등촌동 SBS앞에서. [사진제공=고수봉] '나나스쿨'과 처음 함께 하던 21살 때 등촌동 SBS앞에서. [사진제공=고수봉]

안무가를 위한 덕목‧소양

“일단 많이 봐야 하고 연습도 많이 해야 합니다. 이 두 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수봉 is

1978년 서울생. 2남1녀 중 막내. / 아버지는 건설업, 어머니는 식당 및 여러 일에 종사. / 어릴 때 조용한 성격으로 춤을 좋아해 혼자 연습하는 게 행복. 어느 날 학교 장기자랑에서 멋지게 춤을 춰 학생들에게 놀라움을 줌. 수줍음 많이 타던 애의 멋진 ‘반전’ / 학생 때부터 장래 희망을 ‘댄스가수’로 씀. / 중학 시절 담임 선생이 안양예고를 추천했으나 집에서 거리가 너무 멀어 가지 않고 집 근처 동양공업고교 입학. 졸업 후 백제예술대 입학해 2개월 다니고 중퇴. 이후 현역 생활. / 처음엔 비보이 위주였지만 방송하면서 다양하게 댄스 스타일을 업그레이드하며 전방위 안무가로 도약. / 일 자체가 불규칙하다 보니 이성을 만나 연애할 시간이 없어 아직 미혼. / 취미 캠핑. / 음주 일주일 평균 1~2회. 주량 소주 3~4병 이상. 

고수봉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발라드다. “재훈이 형 발라드를 특히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쿨’이 댄스음악만 많이 한 줄 알지만, 실제론 너무 좋은 발라드곡도 많습니다.”

안무는 몸을 많이 쓰는 직종이라 특히 몸 관리가 중요하다.

“집에서 근력 운동. 팔굽혀펴기, 윗몸 일으키기 위주로 다듬고 있습니다. 3개월 열심히 하고 몸을 잠깐 풀어준 후 다시 3개월 열심히 하는 사이클을 유지합니다.”

“나이를 먹으니 신체적 영역도 한계가 오기 마련입니다. 예전처럼 파워풀한 동작은 이제 좀. 반면 무대를 넓게 보는 조망력과 아이디어, 그리고 돌발상황 대처 능력 등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콘서트 중 갑자기 멤버 한 명이 몸이 안 좋아 빠지면 전체적인 안무 동선도 현장에서 빠르게 다시 짜야 합니다. 이외에 각종 돌발변수를 얼마만큼 유연하게 대처하느냐도 안무가에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고수봉 감독은 향후 안무뿐만 아니라 음향, 조명, 무대 등을 총괄하는 공연 연출(공연 감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90년대에 함께 활동하던 안무팀 단장끼리 뭉쳐 무대를 꾸미고 싶다고도 했다. 그때만의 느낌으로 무대를 선보이면 요즘과 다른 매력과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현재 ‘나나스쿨’은 홈페이지가 없다. 그래서 종종 내 이메일로 담당자와 연락할 방법을 문의해오는 독자들이 있다. 이에 대해 고수봉 감독은 “공식 SNS를 통해 채용 공고 등 각종 공지를 올리고 있다”며 “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노크해라. 항상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실력만 갖추었다면 됩니다. 특히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주변에서 후배들이 ‘형들이 있어 우리도 힘이 되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저는 (이 나이 되도록) 현장 일을 오래 하는 사람이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안무가는 노력하고 관리만 잘하면 오래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순간이 힘들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세요. 후배들이 저를 보며 ‘멋있는 형’, ‘저 나이까지 할 수 있구나’라며 희망과 용기를 주는 존재로 남고 싶습니다.”